영어 편
집안에 불가사의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송아지를 지붕으로 번쩍 들어 올려 구출한 고모. 중공군 총탄을 피해 압록강에서 서울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할아버지. 술김에 산 로또 용지를 담뱃갑과 함께 버렸는데 1등이었다는 삼촌. 그런 일들.
우리 집안의 불가사의는 내가 대학교를 입학한 사건이었다. 그것도 꽤 나쁘지 않은 대학교에 말이다. 나 자신도 믿기지 않는데 남이 보기엔 오죽할까 싶다.
유년 시절, 난 평범한 시골아이였다. 친구들과 산과 들에 놀러 다니는 꾀죄죄한 그런 아이.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다. 시험 기간은 일찍 마치는 날이라 좋아했다. 시험 칠 때는 문제지를 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봐도 모르니까. OMR카드에 답을 한 줄로 긋거나 대충 그려서 냈다.
시내에 고등학교가 두 개밖에 없었다. 대충 그런 이유로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1학년이 끝나갈 때쯤, 문득 대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딱히 대학교라기보다는 서울로 가고 싶었다. 어머니는 몇 수를 해도 좋으니 될 때까지 해보라고 했다.
입시학원도, 과외도 없는 시골이었다. 대부분 전문대나 지방대를 진학하는 학교에서 기댈만한 선생도 없었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무작정 서점으로 가 영어 이론서를 샀다. 몇 페이지 못 보고 덮어버렸다.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지루했다.
작전을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문제만 맞히면 되는 것 아닌가? 서점에 다시 가서 매대에 있는 8절 문제집을 모조리 다 샀다. 틀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계속 보다 보니 문제가 모두 같은 패턴, 같은 순서로 배치된 걸 알 수 있었다. 그다음은 문제마다 답을 찾는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장 삽입 문제는 이런 식, 문장 배열 문제는 저런 식. 서점에 안 풀어본 문제집이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패턴 연구만 했다.
어느 순간부터 ‘해석도 안 되고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하나는 답일 확률이 높다’가 보였다. 어차피 패턴만 보기 때문에, 다 풀고도 20분이 남았다. 남은 시간은 처음으로 되돌아가 정답 확률을 높이는 작업을 했다. 이 기이한 방법으로 점수를 80점 초반대까지 끌어 올렸다.
첫 수능을 치르고 바로 경기도 소재의 기숙 재수 학원에 들어갔다. 영어 선생이 그 패턴들을, 심지어 더 쉬운 방법으로 딱 5일 만에 정리해 줬다. 지나온 시간이 허망했다. 이게 서울의 위대함인가 싶었다. (그때는 경기도와 서울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재수 1년간은 문제는 거의 풀지도 않았다. 단어와 기초 문법 공부만 죽어라 했다. 공부를 거꾸로 한 셈이었다.
이래서 서울, 서울 하는 거구나. 문화충격이 기폭제가 되었다. 반드시 서울로 오고 말겠다며 작정하고 공부했다. 그렇게 재수 1년 만에 서울로 입성하게 된, 우리 집안의 불가사의한 이야기, 영어 편은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