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전설 2

언어 영역 편

by 글쓰는 아재
excel-1771393_1280.jpg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숫자 지옥에 빠져 살고 있다




언어영역(국어)은 처음부터 70점 중반 대였다. 국어 시험에는 나름 합리적인 비결이 있었다. 물론, 그 비결은 성인이 되어 추론한 결과다. 다른 사람 못지않게 나도 궁금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말이다.


비결은 독서량이었다. 어린 시절, 학교 성적은 바닥이었지만 독서량은 상위권이었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단칸방에 살던 때도 항상 책은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책은 *ABE 전집,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 셜록 홈스 전집,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퇴마록, 그 외 동화책, 청소년 문학 등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독서량의 90 퍼센트 이상이 초등학생 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는 만화방에서 만화책만 읽었고, 이연걸, 성룡, 홍금보에 빠져 비디오 가게의 홍콩 영화를 섭렵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형님들에게 죄송하지만, 그 시절 최고의 영화는 토요 명화에서 봤던 중경삼림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뇌가 한참 발달하는 시기에 독서를 한 게 유효하지 않았나 싶다. 중학생이면 이미 뇌 발달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을 테니, 어린이 때의 뇌 자극이 큰 효과를 보지 않았을까?


독서가 공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내가 뇌과학 전문가는 아니니까. 어쨌든 국어 시험은 특별히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 패턴이나, 유형 분석 정도만 하고도 점수는 최상위권이었다. 선천적인지 후천적 능력인지 모르지만, 속독도 가능해 문제 푸는 속도도 빨랐다. 다 풀고 다시 확인할 여유가 있을 정도였다.


분명 영어 시험도 독서의 영향이 있었다. 외국어를 읽는 것과 글을 읽는 것은 별개 능력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을 줄 알면 단어 몇 개만으로 문장 추론이 가능하다. 문장과 문장, 행간을 볼 줄 알면 글 전체의 맥락이 보인다. 수능 영어 시험 문제 대부분은 외국어보다는 글을 읽는 문제다. 그런 이유로 내가 유리했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책만 읽으라고 했어요.” 사람들은 어머니가 허세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 도박이 성공했음을, 어머니도 나중에야 알았다. 어려운 일이기는 했다. 학교 성적이 꼴찌인데 소설책이나 끼고 앉아있는 자식 꼴을 누가 참아낼 수 있을까? 그걸 이겨낼 대한민국 부모는 흔치 않다.


국어와 영어는 유소년 시절의 나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문제는 수학이었다. 수학은, 숫자는, 정말이지 지옥 맛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였다.


* ABE 전집, 80년대 중반부터 90대 초반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어린이 문학 전집(88권). 대학교 때 우연히 다시 몇 권을 봤는데, 어린이 문학 치고는 무거운 내용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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