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전설 3

수학 편

by 글쓰는 아재


수학의 정석.jpg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30살 넘어서 가끔씩 취미로 풀기 시작했다




수학은 언어와 차원이 다른, 직관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점수는 바닥이었다. 최선을 다해 풀면 30점대, 감으로 찍어서 풀면 40점대. 머리로 푼 것보다 찍어서 맞은 점수가 더 높았다. 풀이를 아는 문제도 산수를 못 해 틀렸다. 사칙연산조차 엉망이었다. 30점이라도 나오는 게 다행이었다.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집안의 유일한 이과 출신인 어머니가 등판했다.(수학을 외워서 시험 본 아버지는 제외)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수학은 그냥 되는 게 아니야. 사칙연산이 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고, 그 단계를 넘어야 또 다른 단계를 할 수 있고, 기본부터 쌓아 가야 해. 근데, 넌 기본이 0인 상태잖아.”


어머니가 구해온 문제집은 눈높이였다. 내 조카가 다섯 살에 풀던 그 눈높이. 그렇게 고3 자율학습 시간에 눈높이 유아 문제집을 푸는 미친놈이 탄생했다. 친구들이 드디어 제대로 실성했다며 놀렸다. 신경 쓰지 않았다. 몇 년이 걸리든 될 때까지 할 작정이었으니까. 그만큼 진지했다 난. 2~3주씩 잡고 속도를 올리면서 단계별로 올라갔다. 수학의 정석 공통수학을 보고 있을 때 즈음 첫 수능을 치렀다.


재수 때는 시간 대부분을 수학에 쏟아부었다. 언어와 외국어 공부가 수월했기에 가능했다. 좋은 선생도 만났다. 살면서 천재를 딱 두 명 만나봤는데, 그 선생이 그중 한 명이었다. 친절한 편은 아니었지만, 기가 막히게 잘 가르쳤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마지막 모의고사를 칠 때까지 점수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수학 때문에 두 번째 시험도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삼수는 또 어디서 해야 하나. 이제 겨우 재수인데 왜 이렇게 힘들까. 계속할 수 있을까? 불안이 너무 심했는지 시험 전날 열이 많이 올랐다. 예비 소집은 아버지가 대신 갔다.


수능 당일, 예상대로 2교시는 혼돈이었다. 종이 울리기 직전까지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 8문제 정도를 감으로 찍어서 냈다. 나머지 문제를 제대로 풀었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답은 당연히 못 적어서 나왔다. 가채점할 때는 내가 뭘 썼는지 기억도 못 했다. 채점하다 말고 엉엉 울고 있는 모습에 어머니가 놀라서 쳐다봤다.(공부 때문에 우는 모습을 처음 봐서 신기했다고 한다)


수능 성적표를 받았을 때 나도 황당했다. 수학 점수가 왜 이렇게 잘 나온 거지? 감으로 찍은 문제가 거의 다 맞았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그랬다. 원서를 낸 대학교 세 곳 모두 합격했다. 뭔가 이상하지만, 결론이 그렇게 됐다.


그런저런 이유로 나의 대학교 입학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집안의 불가사의로 말이다.


에필로그

결국, 그는 경영대 필수 과목이었던 대학 수학을 세 번 낙제하는 참사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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