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포기해도 그건 못 참지
하나.
글은 길어야 했다. 문학도, 그렇지 않은 글도. 회사에서 쓰이는 보고서도 길고 길어야만 했다. 지금은 다르다. 빠른 속도와 편리함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동영상이 텍스트를 대체하고 시각 자료를 곁들인 짧은 글이 사랑받는다. 글자가 죽어가는 세상에서 긴 글을 견뎌낼 독자는 많지 않다. 다수의 독자는 긴 글은 읽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둘.
글의 길이는 짧아졌지만 쓰기는 더 힘들다. 하고 싶은 말을 압축해야 한다. 짧은 순간에 흥미를 끌 수 있도록 재미도 있어야 한다. 번뜩이는 재치를 텍스트로 풀어낼 문장력도 필요하다. 짧은 글은 만족시켜야 할 대상의 범위가 넓다. 긴 글은 소수의 사람만 읽었지만 짧은 글은 다수의 사람이 읽는다. 소수를 위한 주제는 학술적인 글에나 적합하다.
셋.
글을 읽기 위해서 깊고 넓은 지식이 필요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시대의 명문이라는 글을 읽고 좌절했다. ‘아이고, 명색이 글 마니아인데 식견이 얕아 명문을 못 읽는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못 읽으면 읽지 않는다. 명문이라는 게 명문 대학과 비슷한 말이었나 싶다. 소수의 사람만 입학할 수 있는 학교, 특별한 사람만 읽을 수 있는 글.
넷.
문학성은 쉽게 놓을 수 없다. 어쨌든 예술의 영역이니까. 평이하기만 한 예술이 예술로서 가치가 있을까? 조금 복잡해도, 어려워도, 설사 욕을 먹더라도 예술은 그런 일을 감당할 의무가 있으니까.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도, 복잡하게 얽힌 삶의 문제를 단순하게 풀어내는 것도 예술이 가진 능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