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꼭 싸우자는 건 아닙니다만
편견을 지울 수 있을까?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다름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다. 그릇의 크기를 아무리 늘려본들 세상에 존재하는 다름을 모두 담을 수 없다. 어떤 것은 그릇 밖으로 튕겨 나올 테고, 그건 내가 담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릇을 지워버리면 어떨까? 무한으로 열려있는 마음.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아량. 신은 가능하다. 가능하니까 신이 필요하고, 필요하니까 수없이 많은 신이 생겨났다. 나약한 인간은 무한한 크기의 그릇을 가질 수 없다.
그릇이 작으면 비우고 담는 수밖에 없다. 담겨있는 기존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비우고 다름으로 채운다. 그러다 넘칠 것 같으면 또 비워내 공간을 마련한다. 반복. 또 반복. 편견을 버린다는 건, 비우고 채우는 과정의 반복이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어렵다.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다. 어렵지만 반복은 숙련도를 높인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페달의 움직임과 중심 잡기를 집중하며 타아 하지만, 익숙해지면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움직인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눈물 찔끔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능숙해지는 자전거 타기처럼 그릇 비우기도 마찬가지다. 아픔과 고뇌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부터 다름을 몸이 먼저 받아들인다.
타고난 그릇이 거대할 수도, 바닥에 구멍이 있어서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재질이 말랑말랑해서 부풀렸다가 빼내는 유연성이 있을 수도 있다. 먼저 자기 그릇의 성질을 파악해야 한다. 내가 나를 알아야 다른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꼭 성공하지 않아도 좋다. 타인은 편견을 버리기 위한 내 노력을 비난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사람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이해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다름도 있기 마련이다. 꼭 이해에 도달하지 않아도 좋다. 열린 태도와 마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모든 생각은 편견일 수밖에 없다. 어디에도 완전무결한 생각은 없으니까. 지금 이 생각도 이 글도 편견이다. 그렇기에 항상 의식하고 질문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을까?
*물론 예외는 있다. 내 노력에 “잘난 척하지 마라”, “날 무시하는 거냐”, “비꼬지 말라” 등으로 대응하는 사람. 이 정도 악성인 사람에게는 인내, 인내, 또 인내밖에 답이 없다. 어렵지 않다. 그릇 비우기 연습 자체가 인내를 기르는 과정이니ㄹ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