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소심인가?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조카가 반장선거에서 떨어졌다. 공약 발표 실패라는 분석이 다수의견이다. 반을 조용히 만들겠다고 했다나. 민심을 얻기엔 부족한 공약이긴 했다. “마음껏 떠들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정도였으면 됐으려나.
삼촌의 위로 한마디는 “괜찮아. 소신 있게 말해. 반장 하면 귀찮기만 해. 삼촌이 해봐서 알거든.”였다. 조카는 반에서 가장 말을 안 듣는 친구가 반장이 됐다며 웃었다. 사회의 5할 정도를 벌써 알아버린 자그마한 조카가 안쓰러웠다. “꼭 그렇더라. 항상 형편없는 사람이 잘되더라고.” 말해주고 싶은 불편한 진실은 마음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아웃사이더로 오래 살아본 삼촌으로서 소신을 지키는 게 반드시 옳다고 말하기 힘들다. 어렵고 고된 길이니까. 확신할 수도 없다. 조카가 살아갈 세계는 삼촌과는 다른 곳일 테니까. 어쩌면 그곳에서는 권력을 위해 영합하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을지 모른다.
소신 있는 사람. 그 소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 이 세상엔 그런 사람도 필요해. 혹은 그런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 올지도 몰라. 서울로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만큼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그래, 선택은 조카의 몫이지만 선택지의 정보를 주는 게 어른인 삼촌의 소임이지 않을까?
덧붙임(조카에게 말하지 못한)
삼촌인 반장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하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였어. 어릴 때는 못 한다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소심했거든. 그러고 보니 그런 사람이 소신을 논하는 게 웃기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