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건 별로 관심 없습니다만
질문: 어떤 선배가 되고 싶나요?
답: 선배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회사 동료일 뿐입니다.
회사 문화 혁신 프로그램 목적으로 대리급 직원에게 설문 응답이 있었다. 실명을 밝히는 설문 조사에 누가 저런 빨갱이 같은 대답을 하겠냐마는, 그게 나다.
포용력 있는 멋진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대답을 원한 건가? 조직에 고개 숙여 죄송하지만, 그놈의 선배 노릇 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꼭 그렇게 선배, 후배를 나누어서 역할 놀이를 해야 속이 후련하나?
나는 선배고 너는 후배야.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변화는 없다. 그런 꼬장꼬장한 틀 속에서 아름다운 교감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허세다. 아름다운 선배, 사랑스러운 후배. 그런 동화는 가차 없이 폐기해야 한다. 주입식 역할 정하기 동화는 아이에게 좋지 않다.
선배를 죽어도 못 버리는 이유는 보상심리다. 선배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나도 누려야 하니까. 그동안 당하고 살았는데 억울하게 나만 당할 수 없지. 그런 알량함 때문에 변화가 어렵다.
조직에 인기 많은 선배는 하나둘씩 있다. 그런 사람은 ‘선배 노릇’을 하지 않는다. 선후배를 떠나 격의 없이 지내며,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형제처럼 지낸다.
“그럼 다 친구로 지내지 뭐. 야자 하면서 업무 참 잘 돌아가겠네.”(실제 들어 본 말이다)
직장인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멍청한 소리인지 안다. 회사 생활의 어려움의 팔 할은 인간관계다. 그 관계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지기도, 떨어지기도 한다. 얼굴만 봐도 싫은 사람과 무슨 생산성을 내겠나.
군대 문화는 개발도상국일 때나 유리했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언제까지 썩은 내 풀풀 나는 ‘짬통’에 술을 담을 건가.
구시대의 표현인 ‘멋있는 선배’가 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이를, 직급을, 계급을, 버리고 후배가 아닌 동료로 대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한다.
뭐, 그렇다. 이 글도 지루하다. (상대적으로 볼 때) 나도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이니까. 선배가 어떻고 후배가 어떻고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