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선과 악
군 복무 시절, 국군은 선진 병영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여러 활동을 시도했다.
우리 부대가 야심 차게 도입한 활동은 취침 시간 방송이었다. 일명 ‘잠깐만 좋은 말 코너’. 그날 선택된 사람은 소등 후 방송실에서 1분 동안 좋은 말을 해야 했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선택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본을 스스로 써야 하는 치명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화장실에 쌓여있던 ‘좋은 생각’이 동났다. 그 소책자에 공인된 좋은 생각이 무더기로 쌓여있으니까. 이윽고 내 차례가 돌아왔고 글쟁이 자존심이 베껴 쓰기를 허용할 리 없었다. 나만의 ‘좋은 생각’을 만들겠다며 훈련 틈틈이 짬을 내 대본을 썼다.
사회에서 우리는 가식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 가면은 윤리적, 이성적으로 완벽한 가면입니다. 우리는 내면에 폭력과 억압의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면이라는 방패 덕분에 합의와 효율을 갖추며 생활합니다.
군대도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며 하나의 사회입니다. 물론 군대와 사회가 같지는 않습니다. 군대는 그 가면을 벗으라고 끊임없이 주입하니까요. 네, 우리는 아직 전쟁 중이며 적국에 가면의 법칙이 적용될 수 없는 게 맞습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신분은 군인이며, 불편하지만 그게 군대의 법칙이니까요.
그러나 후임, 선임이 적군은 아닙니다. 왜 아군에게까지 가면의 법칙을 벗고 불편한 본성을 드러내야 할까요? 조직의 합의와 효율을 위해서 가면의 법칙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군 복무가 끝나면 우리는 사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군대의 법칙은 군대 안에서만 통용됩니다. 안정적인 사회 적응을 위해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일개 사병이 이런 말을 떠들다니,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인턴사원이 회사의 썩은 문화를 바꾸자고 떠드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긴 무서울 게 없던 스물한 살이었다. 겁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떠드는 용기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먹고 사는 일의 덫에 걸려버린 지금. 나약한 소시민은 오늘도 뒤에서 펜으로 열심히 떠든다. 줏대는 흐물흐물 녹아 사라지고, 용기는 방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다. 세 치 혀에 붙은 근육은 딱딱하게 굳어 죽어버렸지만, 손가락 근육은 살아남아 매일 자판을 두드리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하나.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조직에 대해 불편함도 커지는 요즘, 옛 추억이 담긴 글을 읽으며 허한 마음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