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찾아온 기적

가족이라는 묶음

by 앤의하루

진료실의 흰빛은
몸보다 먼저
마음을 눌러 앉혔고

차갑게 식은 공기가

천천히 머리를 감쌌다.

“임신이 어렵겠습니다.”
의사의 말은 기계음처럼 떨어졌고,
그들의 시선에 파묻힌 나는
발가벗겨진 채
낯선 흙사래를 맞았다.

“둘 뿐이면 어떻냐,
행복하면 그뿐이지.”
시어머니의 말은 선했

그 따뜻함 아래에서

나는 더 깊게

엄마가 되고 싶었다.


차가운 눈보라에

얼어붙은 도로 위를

두툼한 목도리에 의지한 체

병원을 오갔,

아이가 제 집을 잘 찾도록

감정도 없는 주삿바늘로

내 안의 희망을 매일 찔러 깨웠다.


한 번의 실패는

먹먹한 어둠으로 내려앉았다.

주저앉을 틈 없던 시간들이

어둠으로만 남게 될 줄 알았다.


지만 다시,

칠흑 같은 초음파 화면에

작은 빛이 켜지더니,

또 하나

조심스럽게 깜빡거렸다.


두 점의 규칙적인 리듬은

내 심장을 두드렸고

"임신이 맞습니다."

의사의 한 마디는

귓가에 요동치며 흩어졌다.


기쁨을 실은 택시는

살얼음 녹은 도로 위를

이른 꽃망울 터트리듯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기척 하나에도 울컥하던

아홉 달의 시간은

내 생애 가장 평화로운 계절이었다.

서로의 등을 기대던 두 개의 심장.
밤마다 몸 위로 스며들던 미세한

일렁임과 체온들.


긴 인고의 시간을 지나

두 생명이 나에게로 찾아왔,

강인한 햇살이 수면 위에 부서질 때

나는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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