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묶음
여자의 나이 열한 살
물허벅 등에 메고 선흘리에서 북촌리까지 걸었다
물을 길어 들어 올리는 순간 깨져버린 허벅
빈 허벅에 눈물 담아가며 내려오는 길은 어찌나 멀던지
매질할 거라 생각했던 어머니
"안 깨지는 허벅 사주 켜 울지 말라"
여자의 나이 스물하나
남자가 생활비를 벌겠다고 남의 차 스피커를 떼어냈고
큰딸아이를 등에 업고 찬바람에 옥바라지를 다녔다
체중이 제법 나갔던 딸아이는 교도관들 품에 번갈아 안겼다
겨울밤은 풀빵을 만들어 팔았다
여자의 나이 스물셋
조천읍 함덕리 파란 스레트 지붕의 집
두 번째 아이 진통으로 까무러지던 밤
골방에 숨은 남자는 장모에게 선포했다
아내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겠노라고
여자의 나이 서른넷
배곯아가며 첫 장만한 '석산' 다세대 연립
건설사 부도로 4년을 법원으로 출퇴근했지만
결국 아이 셋과 함께 거리로 나왔다
등이 시렸다.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여자의 나이 예순
하루같이 술에, 놀음에 속만 썩이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독감 증세로 입원을 했다
독감이라 여겼던 병은 어느새 '혈액암'이 되어
남자를 집어삼켰다.
입원한 지 딱 열흘만이었다
여자의 나이 일흔 하나
내 집 갖고 있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마흔이 넘도록 장가 못 간 아들과
오르락내리락 널뛰는 혈압으로 인한 두통과
가끔 조여 오는 심장으로
여즉 삶은 퍽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