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향

하루를 위한 하루

by 앤의하루

김이 서린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쓰윽 문질러 본다.
그러고 나면 앞이 조금은 더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금세 다시 흐려지는 것들은 애초에 손길로는 닿지 않는 시간들이라는 걸 나는 매번 뒤늦게 깨닫는다.

두 계절 동안 길러온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
가벼워지겠지, 후련해지겠지 싶었지만 정작 사라지지 않는 건 자르고도 한참을 머릿속에 맴도는 미련이었다.

늘 뿌리던 향수를 분리수거함에 조심스레 넣었다.
버리는 손끝이 조금 떨렸다.
낡은 감정과도 인사를 해야 할 때라 생각했지만 지워지지 않는 향기는 여전히 마음 어딘가에서 은근한 결로 남아 있었으니까.

어쩌면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들은
이렇게 사소한 일상 속에서 스며 나오는 건지도 모른다.
지워지지 않는 것, 없어지지 않는 것, 낡았음에도 이상하게 오래 남아 있는 것들.
문을 닫고 들어서는데도 뒤따라오는 은근한 향기처럼.

나는 그 지점에서 비로소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지우지 못해도, 잊히지 않아도 괜찮다.
흔들리는 마음을 인정하는 일 역시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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