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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Sep 22. 2016

생각의 가치

생과 사; 삶과 생각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억수가 쏟아 내린다. 빗물이 판을 치는 세상에 온전한 형체는 없다. 이것과 저것이 한데 섞이어 각기 제자리를 잃어버린다. 잡스러운 물 냄새가 코를 찔러대지만, 시선은 적당한 정처를 찾지 못한다. ‘나’의 자리까지 사라진 이 둘도 없는 난세. 이곳은 나의 머릿속, 생각 안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헤아리고, 직관하며, 계산하고, 상상한다. 쉬는 법을 모르는 기계처럼, 생각은 지금도 생각한다. 허나, 그 과장된 성실함에 찬사를 보내는 이 하나 없다. 시곗바늘이 끝을 모르는 회전을 계속하더라도, 우리는 시계를 향해 감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당연한 연속이고, 곧 당위적 진행이다. 굳이 우리는 그 무한한 노동에 대해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무관심을 등에 업은 생각의 무리는 이내 혼란을 불러오고 머릿속을 지배한다. 늦은 점심으로 파스타를 먹으면서, 우리는 어제 본 영화의 결말을 떠올린다.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헤어진 연인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더듬는다. 운전을 하면서도 평소 좋아하는 매운 떡볶이 생각에 침이 고이고, 회의 중에는 출근길에 산 복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한다. 몸과 생각이 따로 노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 우리는 멀티테스킹이 가능하다며 호기롭게 자찬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흔한 일상의 풍경인 양 혀를 차서도 안 된다. 생각은 이미 머릿속을 지배한 것이고, 나아가 인생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것이다.


 여기서 비판의 대상은 ‘생각일반’이 아니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했던 생각, 피타고라스가 삼각형을 그리며 했을 생각, 플라톤이 스승의 인생을 회상하며 들었던 생각 등. 위대한 인류의 위대한 생각들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의 삶은 한 마디로 황량했을 것이다. 즉, 인간의 생각이 죄다 번잡하고 가볍다 할 수는 없다. 익히 알듯이 몇몇 생각은 역사를 바꾸고 시대를 움켜쥐었다. 그 자체로 선하고 힘 있는 이러한 생각들은 가히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에 반해, 지금 우리들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이 무수한 생각들의 가치는 어떠한가. 순간의 기억, 유쾌한 상상, 개인의 기호나 욕구가 태반임에도, 우리의 정신과 삶 전반에 온갖 훼방을 놓는다. 집중을 방해하고, 능력을 저하시키며, 기어이 이상과 자존을 무너뜨린다. 혹자는 저렇게 가치 없어 보이는 생각들도 결국 삶의 일부이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가치 없어 보이는 생각들에 구태여 가치를 매기는 수고야말로, 무가치한 생각들의 숙주들이 맡은 임무일 뿐이다.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탈레스는 만물의 원질(arche)을 '물'이라 하였다.

 서양철학의 아버지 탈레스는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단순해 보이는 이 개인적인 생각이 인류 최초의 철학적 사색으로 기록된다. 기원전 6, 7세기를 살았던 탈레스의 생각에 대해 현대인 누구나가 답할 수 있다. 현대 과학의 위상은 만물의 근원을 답하기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그 생각의 가치를 매기라 한다면, 제 아무리 수준 높은 기술과 교양을 앞세운다 해도 선뜻 할 수 없는 일이다. 탈레스의 생각은 서양철학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였고, 덕분에 우리는 만학의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처럼 훌륭한 생각은 절대 썩는 일이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나 어지러운 세상이 도래해도, 생각은 그 가치에 맞게 남는다.  



Cogito ergo sum
근대철학의 선구자, 르네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문장일 것이다. 이 짧은 명제로 데카르트는 생각을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였다. 절대 의심할 수 없는 의심, 생각 자체를 통해 그 주체인 자신을 직관한 것이다. 그의 생각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동했는지는 논외이나, 그렇게 시작된 생각은 결과 근대철학의 포문을 여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음을 생각하는 것. 데카르트가 한 작업은 뛰어난 식견이나 별다른 지식을 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예삿일이, 지금은 누구나 알법한 명언의 축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의문이다. 그는 생각에 집중하고, 생각을 더해가며, 생각을 의식한 끝에, 철학사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우리는 생각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일상의 잡다한 생각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어지러운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현실을 핑계로 게으름에 빠져 그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하여 불교의 말씀대로 모든 번뇌를 내던지고 무념의 경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 옛날 탈레스가 했던 것처럼, 하나의 원대한 꿈, 삶의 중심이 되는 자신만의 생각을 품으면 된다. 그리고는 데카르트처럼 그 생각에 집중하고, 열심히 의식하라. 그러면 자연히 잡생각은 줄고, 정신과 삶에는 질서가 잡힐 것이다. 그 생각의 가치가, 곧 삶의 가치이다. 내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떤 실천을 하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오롯이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에 달려있다.



생각을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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