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과거를 처음 제대로 궁금해본 순간
재연이 태어난 건 1967년이지만, 그 당시 많은 아이들이 그랬듯 재연은 그다음 해인 1968년에 출생신고가 되었다. 전라북도 정읍에서 6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재연은 20년 넘게 한 국립대학교에서 교수일로 재직 중이며 최근에는 창업까지 하여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2024년, 그의 나이는 어느새 예순에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재연은 딸에게 “120살까지는 살아야 하니 아직 더 살 세월이 더 많다”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재연은 평소에 잊는 것이 많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과거보다는 미래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력을 몽땅 쓰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서 뇌의 기능이 전과 같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냥 재연의 성향아 그랬다. 그는 과거의 기억을 “사진 현상하듯이 일부 장면만 떠오른다”라고 말했다. 재연의 친구 중에는 과거의 기억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하는 재주가 있는 놈이 있는데,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친구의 기억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하지만 재연은 본인이 과거를 굳이 기억하려고 노력하지도,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다고 고백했다. 마치 현재와 미래만을 사는 사람처럼. 재연은 지난주에도 무엇을 했는지 겨우 떠올린다고 했다.
재연은 추석 연휴에 먹은 저녁이 소화되지 않아 딸과 함께 저녁 산책을 하고 있었다. 시골의 밤은 무서울 만큼 깜깜했지만 논밭 산책 길은 재연의 이야기를 듣기에 충분히 길었다. 재연은 호탕하게 말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딸은 그게 의외라고 느꼈다. 아빠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지 직접 들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녁 산책은 길어졌다.
재연의 이야기는 그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골에서 자란 재연은 공부를 꽤 잘하는 학생이었다. 아버지인 희겸은 재연이 의대를 진학하기를 바랐다. 재연도 의대에 대한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막연히 흰 가운을 입는 과학자들을 동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재연과 희겸은 내기를 했다. 대학입학 학력고사에서 목표 점수를 넘기면 재연이 원하는 학과를 쓰고, 넘기지 못하면 희겸의 바람대로 의대를 가기로. 재연은 목표하던 점수를 넘기지 못했다. 여전히 과학을 동경했지만 재연은 점수에 맞춰 C대학 의과대학을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그 쯤 뉴스에서는 원치 않은 전공을 택했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청년의 이야기가 보도됐다. 혹시라도 막냇동생도 허튼 생각을 할까 봐 걱정이 됐던 재연의 셋째 형 재형은 동생에게 원하는 과를 진학하라고 조언했다. 형의 말을 들은 재연은 마음이 다시 흔들렸고, 결국 S대학교 1 지망으로 화학과를, 2 지망으로 농화학과를 지원했다. 재연은 그렇게 S 대학교 85학번 농화학과 신입생이 됐다.
대학생활 초반에는 꽤나 모범생이었으나, 2학년 때 연극 동아리에 들면서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다. 그는 운동권 학생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S 대는 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재연 역시 소위 ‘찍힌’ 학생이 됐다. 그 소식은 정읍에 있는 희겸의 귀까지 들어갔다. 희겸은 마당극 북쟁이었던 재연의 손을 낚아채 정읍으로 데리고 왔다. 희겸은 막내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길 바랐던 것이지, 운동을 하길 원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어디 가서 아들이 그렇게 밉보이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그렇게 며칠간 재연은 집에 얌전히 있나 싶었는데 얼마 안 있어 대학친구로부터 군대를 입영한다는 전보를 받았다. 재연은 친구 얼굴은 봐야겠다면서 나갔고 그 길로 도망갔다. 물론 전보는 미리 재연이 친구한테 부탁한 거짓된 내용이었다. 재연은 조선일보 신문 배달 알바를 했고, 배달영업소에서 제공하는 집에서 지내며 운동을 했다. 그 당시 재연은 공장에서 일하며 운동을 하는 그런 삶을 그렸던 것도 같다.
그러던 중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 부모인 희겸과 인덕의 가슴에 못이 박히는 사건이기도 했다. 재연이 운동을 하던 중 횃불을 건네다 온몸에 불이 붙은 것이다. 불은 빠르게 번졌고 화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치 않은 스트립쇼도 감행해야 했다. 그때 입었던 화상은 아직도 몸에 남아있어 가끔 그 부위가 극도로 간지러울 때가 있다. 재연이 운동을 했던 흔적은 검은 화상자국으로 남았다. 그 당시 대학교수가 찾아와 재연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재연은 괜찮지 않다고, 너무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거짓말 같게도 그 이후 몸은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가장 힘들 때가 사실은 가장 희망적일 때야. 가장 밑바닥을 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거든!” 재연은 딸에게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딸은 이런 재연적 사고를 사랑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이거늘, 이미 재연의 몸에는 큰 화상 자국이 검게 남아 있었다. 공장을 다니며 운동을 하는 삶은 육체적으로 견디기에 너무 버거웠다. 결국 재연은 다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공부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모교인 S대학교에서는 이미 문제 학생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대학원 진학을 고려할 수는 없었다. 여러 고민 끝에 재연은 K대학교 대학원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공부로서 다시 한번 내 길을 찾자’는 마음이었다. 결심한 후 재연은 마치 고시 준비를 하듯, 도서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2년 동안 밤낮으로 책을 읽고 공부에 몰두했다. 어머니 인덕은 그런 아들이 안쓰러웠는지 멀리서 수원으로 올라와 직접 밥을 챙겨주었다. 매일 인덕의 밥을 먹으며 그는 몸과 마음을 다잡았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재연은 포기하지 않았다. 두 해가 지나고, 마침내 그는 대학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대학 동기 중에 K대학원까지 진학한 사람은 재연이 유일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재연은 자신의 적성이 이 길에 맞는지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학문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과정은 흥미로울 때도 물론 있었지만, 한없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많았다. 대학원 과정을 마칠 때쯤 재연은 다른 길을 모색하기로 결심했다. 학문적 연구보다는 실제 사회에서 이론을 적용하고, 실용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졸업 후 취직을 결심했다. 그렇게 재연은 당시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대기업 중 하나였던 S그룹의 J합성 연구원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사회초년생 재연은 여전히 열정이 넘쳤고 의로웠다. 재연은 대학원까지 졸업한 자신의 학력이 우수하다고 자부했지만, 동시에 고졸 출신 사원들이 회사 내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목격하고는 그 불공정함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차별 없이 모든 사원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그 결과 회사에서 다시 ‘문제아’로 찍히게 되었다.
재연의 직장 생활에서의 두 번째 위기는 그리 멀지 않았다. 여전히 재연은 대학 시절 함께 운동권 활동을 하던 선배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정치적 변동기였고, 대선 시즌이 다가오면서 재연의 운동권 선배들은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재연도 그 분위기에 참여하게 되었고, 사내에서 정치적 홍보물을 비밀리에 배포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이 일을 알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연은 빠르게 주의 인물로 지목되었다. 비서실에서 재연에게 전한 메시지는 간단했다. '이 회사에서 너의 앞날은 없으니, 나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회사는 재연에게 다른 곳으로의 추천을 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재연에게는 이미 한국 최고 기업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그 어떤 추천도 의미가 없었다. 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이 회사와의 관계가 끝났음을 직감했다. 더 이상 억지로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재연의 첫 직장 생활은 마무리되었지만 재연은 아직 어렸다.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시험에 또 도전하는 일뿐이었다. 이번에는 국비장학생 과정을 준비했다. 6개월 정도 지났을까. 재연의 1 지망은 미국이었고 2 지망은 프랑스였다. 프랑스를 2 지망으로 넣었던 이유는 그저 본인의 지도 교수님도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1 지망 미국이 되겠거니 했는데, 맙소사 프랑스를 가게 됐다. 아무래도 인생은 계획대로 안 되는 게 맞나 보다. 프랑스어라고는 ‘봉주르(Bonjour)’ 정도만 겨우 알고 있던 재연은 그 길로 프랑스어 학원에 2개월 등록했다고 말했다.
딸은 프랑스 얘기가 나오니 더욱 눈을 반짝이며 재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재연의 프랑스 유학시절에 태어났다. 프랑스어를 미처 배우기도 전에 떠나버리긴 했지만 프랑스에 대한 동경으로 어진은 대학시절 프랑스 리옹으로 교환학생까지 다녀왔었다. 딸은 재연에게 물었다. “그럼 논문은 프랑스어로 썼어?” 재연은 답했다. “프랑스어로도 쓰고, 영어로도 썼지. 근데 알린이라는 친구가 정말 많이 도와줬어. 처음에는 서로를 안 좋아하고 못 미더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더라고.” 딸의 호기심이 일렁거렸다. ‘이렇게 착한 아빠도 동료들이랑 트러블이 있었다고?’ 재연은 자존심이 강한 편이었다. 목표하던 학력고사 성적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재수를 하지 않고, 삼성에서 나와 새로운 일자리를 곧바로 구하지 않았던 것도 다 재연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한국 최고의 대학교와 대학원을 연달아 나왔던 재연은 본인과 함께 본인의 멘토 알린에게도 객기를 부렸다. 알린이 하라는 대로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본인의 연구 방식을 고집하며 객기를 부리니 알린 입장에서도 ‘이 뭣도 모르는 아시아계 남자는 왜 내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걸까?’ 싶은 빌런이었을 것이다.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알린은 참다못해 지도교수에게 재연과 함께 일을 할 수 없다고 항의했고 그렇게 재연, 알린, 지도교수는 삼자대면 면담을 했다. 재연은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면담 시간은 통틀어 20분도 채 안 됐던 것 같은데 교수가 “내가 너네들 때문에 힘들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근데 그 순간 재연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게. 내가 왜 이렇게까지 자존심을 부리고 있는 걸까’ 순간 재연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알린과 화해의 악수를 신청했다. 재연은 아마 그날 이후로 알린에게 매우 협조적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연구 방법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조율하는 법을 배웠다. 알린도 차츰 재연에게 마음을 열고 전폭적으로 그의 일에 지지해 줬으니까. 알린은 본인의 시간을 내어 재연을 도와줬고, 알린네에서 밤을 새 가며 논문을 작성하는 일도 빈번했다. 두 사람은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했고, 그로 인해 연구도 한층 더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재연은 프랑스에서 박사과정도 무사히 마쳤다.
딸이 아빠의 꽤나 다이내믹했던 학창 시절과 사회생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는 건 처음이었다. 직장에 들어간 지 올해로 5년 차가 된 딸은 이런 아빠의 이야기가 퍽 흥미로웠고 같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 당시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되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 아빠가 이렇게 멋지게 살았다면,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인생에 우여곡절이 있어도,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말자고. 그때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고,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들 난 같은 길을 선택할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