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거친 도로 속을 운전해 나간다는 것에 대해
나는 한때 정의를 믿는 사람이었다. 어린 나에게 정의란 더하기와 빼기의 양쪽에 숫자를 집어넣으면 언제나 같은 결과가 도출되는 것처럼 당연하고 불변하는 무언가였다.
아빠는 수중에 돈이 없어도 길을 걷다 마주친 노숙자에게 오만원을 쥐어주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자신에게 모질게 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때에도 언제나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덧붙이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때로 지나치게 불 같아서 화르륵 타오를 것처럼 주변 사람들을 두렵게 했지만, 그만큼 성실하고 신념이 강했다. 꺼지지 않는 강한 불 같았다. 엄마는 겁이 많고 소심했지만, 아주 섬세하고 세심한 눈으로 늘 타인을 관찰하며 그를 지지했다. 마치 조용히 시냇가로 유유히 흘러가는 맑은 물처럼.
아주 약하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성정을 타고난 내가 그른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고 언제나 이를 악 물고 견뎠던 것은 정의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삶에서 빠지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더해지는 것도 있을 거야."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며 견뎌냈던 어린 나의 시간들은 으레 그런 것들을 배웠다.
제로가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마이너스는 아닐 거야. 그러니까 성실하게, 꿋꿋하게 견디면 언젠가 나아질 수 있어. 내게 나쁘게 구는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 더한 친절을 베풀며 다가오는 사람이 나타날 거야.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십이년 동안 단 한번도 개근상을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약한 몸을 타고났다.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병결 일수는 늘 칠일 이상이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당연했던 일상 생활이 내게는 너무나도 힘겨웠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꿈이 있었다. 세상이 정의롭다면, 약한 사람도 언제든 꿈을 가질 수 있으니까. 일상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게 세상이 너무 모질지만 않다면, 나도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노력이 성취될 때까지 세상이 기다려주기만 한다면.
부모님의 세상. 그리고 어릴 때부터 아픈 날이 많아 늘 누워있던 내게 유일한 취미였던 책 읽기. 그 협소한 세상 안에서 나는 몽글몽글한 꿈을 꿨다.
언젠가 건강해져서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겠지? 그럼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친절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니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감동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
방 안에 누워서 꿨던 꿈은 병으로 지친 나를 가끔 설레게 해주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정의가 조금씩 흔들려갔다. 내가 보는 세상이 3차원의 실물이 아니라, 누군가 장난으로 그려놓은 2차원의 단순한 그림 같았다. 때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짓궂게 마구 지워버리는.
어릴 때부터 읽었던 책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이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대단한 일을 해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진실된 관계를 맺거나 가장 절실한 사랑을 하면서 삶에 대해 철학적으로 외쳤다. 그것이 내게는 곧 규칙이었고, 세상이란 정의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가장 이기적이고 생각이 없는 이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단순한 감정과 계산적인 조종이 사람들을 뒤흔들었다. 진심이 통하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정의를 외치는 나는 마치 냉동인간이었다가 다시 녹아버린 사람인 것처럼, 이질적이고 생경한 존재였다.
누구와도 어울리기가 힘들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게 마치 벽과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본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추악했다. 성실 끝에 목표를 얻어낸 사람은 사실 그 승리를 위해 뼈가 깎이고 살이 뜯기는 고통을 이겨냈다는 것. 아빠가 만들어낸 아빠의 삶과 우리 가족의 삶, 그리고 엄마가 지켜낸 우리 가족의 안정과 마음은 결코 당연하고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단지 네 사람을 지켜낸다는 것. 나 한 사람을 넘어서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끝내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운 일인지, 나는 실감하고 말았다.
아빠는 나를 낳고,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억울함을 견뎌야 했던 걸까.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우리의 마음이 쉽게 물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홀로 눈물을 참았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들이 머리와 마음 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성실했던 부모님은, 결국 병을 얻어 삶을 마감했다.
아들이 아직 사회에 발을 제대로 들이지도 못했을 때, 딸이 겨우 고등학생일 때. 그 어린 아이들을 두고 죽음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기분은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탄식이 나온다. 성실하게 살아간 사람들이었건만, 최후마저도 이토록 비참하고 고통스럽다니.
삶이라는 거, 가끔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솔직히 자주 드는 의문이다.
동정을 얻는 건 쉽지만 사랑을 받는 건 몹시도 어렵다. 부모님을 일찍 잃은 내게 사람들은 언제나 일방향적인 조언과 충고로 인상을 찌푸렸다. 따뜻한 무언가를 건네며 말없이 웃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내게 절실했던 것은 후자의 것이었다. 따뜻함. 온화함. 심장에서 시작되어, 손끝과 발끝까지 흠뻑 적시는 그런 설레는 온기. 그런 것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그러나 그런 온기 같은 건 없었다.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결심했던 건 남편에게서 그런 온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영화를 보다가 전혀 슬프지 않은 장면이 나와도, 내가 거기에 슬퍼서 울면 나를 보고 따라 우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중에는 그 눈물을 꾹꾹 참는 사람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내가 울 때는 자기가 울면 안된다고 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책임감은 언제나 날 행복하게 했다. 행복. 내게는 생경하지만 소중한 감정이었다. 삶을 지탱해주는 가장 농도 짙은 감정.
결혼을 하고 나서 결혼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병이 나를 심장 속까지 잠식했을 때. 열이 오르고 온몸이 떨려 병원에 실려갔다 나왔을 때. 이렇게 대책없이 아픈 몸을 가진 내가 누군가를 만나 병자로서의 삶을 나누어야 한다는 죄책감에 결혼이 후회됐다. 역시 나는 혼자 사는게 나았어. 혼자 살았다면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시들어갈 수 있었을 거야.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착하고 맑은 사람의 사랑을 빼앗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텐데. 문득 여기까지 꾸려온 우리의 삶이 덜컥 두려웠다. 이렇게 내가 평생 아프면 어떡하지. 이러다가 내가 너무 일찍, 갑자기 죽어버린다면 어떡하지. 그 생각은 이상하게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적당한 이유를 찾지 못해서, 아이에 대한 욕구가 생김에도 불구하고 쉽게 결정할 수 없었던 문제였다.
그러나 나는 없고 남편만 남은 세상을 상상하고 있자니, 대책없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내가 없을 남편의 세상에 남겨둘 나의 선물,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돈이 없는 것보다 사랑과 깊이가 없는 것을 더욱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남편이 가장 힘들 건 사랑과 깊이의 부재일 것이다.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건 남편과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그뿐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훌쩍이는 동안 남편이 내 작은 흐느낌을 듣고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여보는 아주 오래 살거야.
그리고 이 아픔은 곧 끝날 거야. 내가 미래를 보고 왔어.
남편이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으로 차를 샀을 때, 나는 마치 내가 초보운전자인 것처럼 긴장하며 도로와 네비게이션 화면을 주시했다. 차 안에 앉아있는 시간은 그전처럼 편안하고 조용한 시간이 아니었다.
남편과 운전하는 차를 꽤 오랫동안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도로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속력이 빠른 차들. 깜빡이가 없이 앞으로 끼어들어오는 차들. 처음 운전하는 길에서는 차선을 고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아빠는 어린 나와 엄마, 그리고 오빠를 태우고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운전을 했을까.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밤의 시골길을 헤쳐나가던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는 나한테 칭찬 받는 걸 좋아했다. 운전이 끝나고 나면 ‘나 베스트 드라이버지?’라며 장난스럽게 내게 칭찬을 유도했지만, 괜히 심술이 났던 나는 한 번도 아빠에게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 그때는 아빠가 짊어진 책임감이 이렇게 막막한 건지 몰랐다. 그저 장난스럽게 웃어넘기는 아빠의 모습이 미웠는데.
잠든 아이들과 피곤한 눈을 한 아내.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시골길, 혹은 지나가는 차 몇 대 없는 고요한 새벽의 고속도로.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 시간동안 아빠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동안 고라니가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들 때도 있었을 거고, 깜빡 몰려온 잠에 잠시 긴장이 풀어졌던 적도 있었을 거다.
그때 심장에 내려앉은 싸늘함을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감췄을 것이다. 딸에게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며. 남편과 나도 긴 운전을 끝내고 서로 장난을 치며 웃었다. 분명 그동안 심장이 내려앉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날이 오니까 이상하게 아빠의 옛 장난이 슬프게 느껴졌다. 말없이 운전을 하던 그 뒷모습도.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우리의 차에는 아이가 함께 탈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기분일까. 오랫동안 생각해본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거친 도로 속을 운전해 나간다는 것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