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진 Jan 11. 2023

'맡기는 연구'에서 발견한 문제들

커뮤니티 기반 참여 연구 시리즈

최근 활동가 출신 연구자인 구현주 님이 출간한 책 '공동체의 감수성'의 서두에서 이런 이야기를 보았다. 


활동가로 일할 때 현장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해석하는 작업에 학계 전문가들의 손을 빌리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나는 때로 아쉬움을 느꼈다. 전문가의 이론적 접근이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고민하는 활동가의 경험을 깊이 있게 반영하지 못하기도 했고, 탁월한 학술적 해석이 활동영역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현장에 있는 활동가나 조직이라면 꽤 자주 만나게 되는 문제의식일 것이다. 흔히 '바쁘게 돌아가는'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현장에서는 활동을 하면 할수록 쏟아지듯 쌓이는 경험. 그 경험으로 인해 형성되는 지혜와 노하우들이 형성되지만 이를 데이터화하거나 구조화된 지식으로 정리하는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우선 현장의 필요에 반응하는 활동의 특성상 당장의 일들을 '해결'하는데 사업의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일들에 인력을 투입하기가 어렵고, 막상 인력을 투입한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일을 수행할 수 있을지 감을 잡기가 힘들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는 일부터가 막막해지기 일쑤다. 결국 현장에서는 이 일들이 실질적 우선순위는 낮은데 일의 난이도는 높은 일로 취급되기에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이를 정리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칠수록 더 과업에 진입하기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래도 이러한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현장에서는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외부의 전문연구자에게 '용역'을 맡기는 것이다. 결국 어떤 일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길은 그 일을 위한 자원을 확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내부에서 시간과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재정 자원을 확보해서 외부의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일을 맡겨도 딱히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도 이러한 과업을 진행한 적이 있고, 주변의 사례들도 보면서 아래와 같은 케이스들을 경험하고, 듣게 된다. 


1. 자원 부족  


기관, 공동체에서는 어렵게 마련한 재정적 자원이지만 충분한 연구를 위해서는 부족한 자원일 경우가 많다. 작은 기관에서의 연구는 수의계약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그 금액의 한도가 낮다. 시민단체의 경우는 그 금액이 천 단위 이상을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연구도 자원의 확보가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에 대한 연구를 할 때는 만나야 하는 사람이 수십 명 단위에 이를 때도 있다. 단순히 연구자의 수입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참여자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을 확보하지 않고 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부담이 되는 일이다. 


2. 연구 설계 및 진행 방식에 대한 문제


한 연구에 너무 많은 과업을 집어넣는 경우도 있다. 어렵게 만든 자원으로 얻은 귀중한 기회이니 이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듯이 한 연구에 묶일 수 없는 혹은 몇 년은 조사해야 가능한 과업들이 욱여넣어지듯 과업지시서 안에 쓰여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이건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그 시간 자원에 대한 고려가 아쉬운 경우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조직의 목표나 방향과 연구의 방향이 일치하기 원할 때다. 즉 결과를 미리 정해놓은 연구를 하기 원하는 단체들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관 평가기간이라서 사업에 대한 평가연구를 해야 하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게 써달라고 하는 경우들이다. (이건 직접 여러 차례 문의받은 적이 있는 사례이다) 이렇지는 않더라도 이미 현장에사 형성된 지식과 경험을 가진 활동가 들은 연구자가 질문을 가지고 확인하려 하는 내용에 대해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대응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반대로 연구자가 특별한 고민 없이 찍어내듯 연구를 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연구 결과가 나오고 보면 이전에 다른 기관에서 했던 연구와 별반 다르지 않다거나, 유사한 해외 사례의 나열이라거나, 시사점까지도 유사한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3. 상호 이해에 대한 문제


연구자가 과업을 맡은 기관의 특성이나 비영리, 공동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지. 동시에 각 기관들도 연구를 하는 목적과 방법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지가 상호 간의 연구경험 그리고 연구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사실 이 부분은 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연구자는 이것이 고려될 필요가 있는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 주제와 과업에 따라 적용되는 이론이나 연구 방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서 '과학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 지식을 생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4. 결과 공유에 대한 문제 


이렇게 진행한 연구의 최종 결과물은 적게는 수십 쪽, 많게는 수백 쪽에 달하는 페이퍼 형태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단 이 페이퍼들은 작성 주체가 '연구자'이기 때문에 이를 아무리 꼼꼼히 읽어도 현장의 사람들은 '연구자'이상의 이해를 가질 수가 없다. 물론 연구 내용이 활동현장의 문제들이기에 활동가들의 이해도는 평균보다 높은 수준에서 형성될 것이다. 하지만 연구 과정에서 오고 간 다양한 문제의식과 고민들이 모두 담기기 어려운 정제된 페이퍼 결과물 만으로는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 페이퍼가 주로 연구자들이 쉽게 이해 가능한 형식으로 쓰였다면 현장에서 쉽게 요점이나 적용점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꼭 이야기할 것은 이러한 사례들은 특히 소규모의 용역방식의 연구를 경험한 내가 제한 적 경험과 관계에서 얻은 지식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케바케'라는 진리는 여기에서도 적용된다. '연구'를 중심에 둔 아주 만족스러운 협업도 있을 수 있고 위의 부분들을 해결하며 활동하는 연구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또 1~4번으로 요점 정리하듯 쓴 문제의식은 문제를 둘러싼 보다 다양한 맥락을 풍부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도 이렇게 써볼 수 있는 것은 비단 이러한 사례가 내 주변 혹은 우리나라에서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해외에서도 있어왔다는 것을 연구물들을 통해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연구들은 아래와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단체(공동체)가 (조직 외부에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단체(공동체)와 연구조직 간의 연구참여가 더 공평하고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연구를 통해 지역사회단체(공동체)의 긍정적 변화와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단체나 커뮤니티가 진행하는 연구가 '연구자에게 맡겨진 연구'가 아니라 '커뮤니티가 함께 참여해 만드는 연구'여야 한다는 전제 속에 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한 방식을 고민하며 나온 것이다. 연구자 중심으로만 이뤄지는 연구에 익숙한 우리 상황에도 맞는 이야기일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이들도 처음부터 이런 고민을 한 것이 아니라 현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혁신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그 생각들을 추적하며 살피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어떤 잠정적 해답을 얻었으며 어떤 실천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