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진 Jan 13. 2023

지식 생산을 위한 지속적인 커뮤니티 참여를 구축하기

커뮤니티 기반 참여 연구 시리즈

커뮤니티 기반 참여 연구 시리즈

Gatekeeper (게이트 키퍼). 우리말로 '문지기'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가 당사자 혹은 커뮤니티의 참여의 중요성과 방법을 이야기하는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영국의 시민사회 연구소인 'Institute for Community Studies' (지역사회 연구소)에서 발간한 'An equitable future for research and innovation' - Building sustained community involvement in knowledge production (연구와 혁신을 위한 공평한 미래 -지식을 생성하기 위한 지속가능한 공동체 참여를 구축하기)라는 보고서를 함께 보자.


연구 자금 제공자, 대학 및 싱크 탱크와 같은 연구 조직은 지식활동의 주도자 혹은 '게이트 키퍼'로 여겨져 왔습니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그들은 비 연구 조직과의 파트너십을 '주도'합니다... 비 연구 행위자는 (연구에) 참여하도록 초대되었지만 어떤 지식이 왜 필요한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개입할) 권한(Power)은 거의 주어지지 않습니다. 


연구라는 분야가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위한 트레이닝을 받고 일하는 전문 연구자와 연구 그룹이 연구 활동에서 주도성을 가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여기서 이야기하는 연구는 주로 사람과 지역,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고 이들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연구자와 비연구자 간의 협력을 전제로하고, 비연구자의 협력과 참여 없이는 진행할 수 없는 연구임에도 연구의 목적과 방향, 방법의 결정권한이 연구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불합리를 넘어 불의에 이르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고 지적하는데 선의로 연구에 참여하기로 했으나 비연구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연구의 결과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물론 모든 연구들은 연구 윤리를 지킬 의무가 있고, 그 테두리 안에서 진행된다(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굳이 나누자면 여기서 지적하는 문제는 도덕문제보다는 연구자와 비연구자 간의 권력(Power) 분배에 관한 문제에 가깝다.


연구자와 연구기관이 '문지기'라고 표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다'와 '아니다'를 구분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이들에게 있는 상황에서 연구에 미치는 현장의 영향력은 감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참여는 필요하기에 커뮤니티는 '권한'을 받는 대신 '과업'을 나누어 받는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과업을 나눠 받음으로써 참여는 하되 주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를 '지식 불의(Knowledge injustice)'로 표현하였다. 


커뮤니티는 '권한'을 받는 대신 '과업'을 나누어 받는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과업을 나눠 받음으로써 참여는 하되 주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이 최근 들어서야 형성된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커뮤니티 액션 리서치(Community Action Research)라던지, 지역사회기반 참여연구 (Community-based participatory research)와 같이 현장 중심으로, 현장의 변화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구하는 방법론들은 지속적으로 시도되었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확실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장점 : 연구에 참여하는 현장의 당사자들의 성장과 커뮤니티의 문제 해결력 강화, 연구 결과의 활용 가능성 증대 등
단점 : 비연구자들의 연구 참여로 인해 연구가 엄밀하게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 증가, 연구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인해 연구의 기간, 비용이 증가될 가능성 등


분명한 장점이 있는 연구 방법임에도 연구가 엄밀하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 만으로도 이 방법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가 팬데믹 시대를 기점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팬데믹은 커뮤니티가 오랫동안 알고 있던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 어떤 사람들의 기본적 생존을 위해서는 사회적, 경제적, 건강과 웰빙을 위협하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커뮤니티 주도의 해결책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보고서)


전문가들도 예측하지 못하거나 구체적 대안을 내어 놓지 못하는 현실에서 커뮤니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솔루션 혹은 커뮤니티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가치 부여가 일어났다. 이는 곧 이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시도들로 이어지고 있다. 단점에 가려 장점을 무시했지만 이제는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단점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모든 연구가 비연구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식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절대적인 기여를 하는 집단이 있다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의 형태에 대해서 함께 대응해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향후 방향에 대한 제안으로 마무리된다. 


1. 어떤 지식이 가치 있는지 자금은 어떻게 조달되어야 하는지 등의 결정에 대해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함.  - R&I 시스템 모든 부분에 대한 커뮤니티 참여의 가치를 확인하고 커뮤니티 그룹이 지식생성 프로세스에서 중심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존중
2. 자금 조달 프로세스 변경 : 커뮤니티 조직이 자금 조달의 직접 수령자, 관리자가 될 수 있음. 
3. 어떤 지식과 혁신이 필요한가에 대한 결정에 더 많은 커뮤니티가 참여
4. 기금 유형 다양화 : 파트너십을 구축, 아이디어 개발, 학습과 교육, 인프라 구축 등을 위한 다양한 유형의 기금을 활성화
5. 관계형 자금지원 : 자금 제공자가 커뮤니티와 장기적인 파트너십으로 움직이는 것. 단순 자금 지원뿐 아니라 연구 접근성을 높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 커뮤니티도 연구 활동의 '영향력'을 입증하고 '성공'을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에 동의하며, 참여 장벽이 높은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요구와 참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노력함. 
6. 장기적 접근 : 연구와 관련한 모든 사람이 지속가능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자금 조달의 중심 목표로 장기적 회복력 구축에 대해 생각함. 이를 위해서는 프로젝트의 '성공'과 '품질'에 대한 기존과는 다른 이해가 필요. 
7. 커뮤니티의 소유권 구축 : 커뮤니티가 생성된 지식과 정보를 소유, 공유, 사용할 수 있기 위한 시도들이 필요. 일반적으로 대학, 연구 자금 제공자에게 가장 큰 이익이 돌아가는 기존의 접근 방식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 이는 궁극적으로 지식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공통자원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함. 


함께 보고서를 읽는 느낌으로 글을 적어보았는데, 더 쉽게 적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개념이 아니라 사례를 통해서 커뮤니티가 참여하는 연구가 무엇인지, 어떤 수준, 어느 정도까지 이를 실천해 볼 수 있는지 소개해 보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맡기는 연구'에서 발견한 문제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