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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Oct 06. 2021

스위스 이민을 생각한다면 1.

여기 와서 살게 된 지 시간이 꽤나 지나면서 스위스 이민을 생각하는 지인 또는 지인의 지인으로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한국을 떠나 산지 13년째에 접어드는 나 역시, 한동안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 꿈꿨지만, 한국의 삶이 만만치 않다는 걸 다시 확인했고 그래서 이민을 꿈꾸는 한국분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여러 나라에 짧게나마 살아 본 내가 느끼기에 스위스는 살기 좋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국 브랜드를 영리하게 마케팅을 잘하는 나라여서 좋은 이미지가 있다. 또 더욱더 한국사람들이 막연히 이민 오고 싶어 하지만, 주변에 막상 이민을 온 사람은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많지 않아서 작은 '환상'이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3년 넘게 여기서 살고 있지만, 얼마나 있을지 모르고 달랑 20킬로 짐 가방 하나 들고 이사를 왔다. 체류허가증 역시 순전히 나를 채용해준 감사한 스위스 회사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어서, 한국의 모든 기반을 정리하고 스위스에 뼈를 묻을 마음으로 오지 않아서 진짜 이민자는 아니다. 하지만 감히 스위스로의 이민에 대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네바로의 이민- 스위스는 살면 살수록 연방 공화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칸톤마다 모든 것이 다르다-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스위스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

제네바 외국인들이 모이는 사이트에는 직장을 구하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정기적으로 올라온다. 결론적으로 스위스에서 똑같은 조건으로 스위스인/유럽인과 경쟁해서 직장을 잡는 것은 아주 어렵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게 안타깝지만 말이다. 물론 결혼을 했거나 가족이 스위스에 있어서 체류허가증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또 제네바에 있는 유엔이나 국제기구에 채용이 된다거나, 엑스팻으로 한국에서 스위스로 파견된다면 역시나 다른 경우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채용이 되려면 고용주가 왜 스위스/유럽인이 아닌 제3 국 인을 고용해야 하는지와 또 스위스/유럽인 중에서 채용하려고 노력했지만 제3 국인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입증해야 한다. (제3국인이라는 용어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프랑스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그렇다.) 사실 나도 이 부분을 어떻게 입증하는지 궁금해서 인사담당자에게 물어보니,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은 듯했다. 그리고 연방 차원에서 제3 국 인에게 줄 수 있는 취업비자 쿼터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내 경우에도 취업과 연계된 체류허가증 신청을 8월에 해서 10월에 받았는데, 혹시나 쿼터가 다 차서 체류허가증을 받지 못하게 될까 봐 좀 걱정을 했었다. 그리고 이 체류허가증 역시 제3 국 인은 해마다 갱신을 해야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동갱신이 되지만, 서류를 맞춰서 내야 하고 신분증 바꿔주는데 100프랑(12만 원 정도) 넘는 돈을 내는 게 짜증이 나기도 한다. 이런 심리적, 구조적 장애물을  여러 개 만들어서, 되도록이면 고용주에게는 스위스인/ 유럽인을 채용하도록 유도하고, 고용자에게는 스위스에서 취업할 의지를 꺾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스위스는 유럽의 복지국가들과는 좀 다르게 해고가 아주 쉽다. 정직원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해도 최대 3개월 전에 통보만 하면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쉽게 해고가 가능하다. 다른 여느 나라처럼 내 체류허가증도 이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조건에 묶여있기 때문에, 해고를 당하면 몇 달은 재취업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겠지만 아니라면 스위스를 떠나야 한다. 내 지인 중에도 제3 국인 출신인데 스위스에 영주권을 따겠다고 온 가족과 함께 왔는데 1년 반 만에 해고를 당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 경우가 있었다. 그러므로 영주권 개념인 permis-C를 얻기 전까지는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아야만 스위스에서 살 수 있다. 


스위스의 고용시장은 정말 치열하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기본적인 임금이 높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다들 석사 이상에 전문적인 업무 경력이 있고 영어와 프랑스어는 기본이고 대부분 3-4개 국어를 구사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 어학원에서 만난 한 친구는 콜롬비아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남편을 따라서 제네바에 왔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고 4개 국어를 구사한다. 그리고 지금은 조그마한 개인회사의 비서로 파트 파임으로(80%) 일하고 있다. 그 친구는 지금 일자리를 찾기까지 9개월 동안 80번이 넘는 지원서를 냈다고 했다. 제네바에 도착해서야 대단한 스펙 없이 정직원 계약을 받은 내가 정말 운이 좋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다른 회사로 옮겨보려고 알아보고 지원도 몇 번 해 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는 걸 보고, 그걸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물론 한국인을 찾는 경우나 본인의 특수한 전문 분야가 있는 경우는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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