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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Sep 04. 2021

포르투 늦여름 휴가 2

- 포르투갈어에 대한 정리 되지 않은 생각

포르투에 오기 전까지 나는 포르투갈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지인 중에 포르투갈 사람이나 브라질 사람이 있긴 하지만, 포르투갈어가 스페인어나 독일어처럼 몰라도 익숙한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항공을 타고 스튜어드가 하는 방송을 들으니, 스페인어랑 비슷한 느낌인데 또 조금 다르다.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쓰는 브라질 친구 말로는 자기는 스페인어를 배운 적이 없지만 듣기만 해도 절반 넘게 이해가 되더란다. 3개월 아르헨티나에 있었더니 그다음부터는 스페인어가 술술 나오더란다. (론리 플래닛에 따르면, 포르투갈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게 가장 쉽다고.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비슷하다고 스페인어를 사용하면 싫어한다고 하니 스페인어보다는 영어가 낫단다.)


어쨌든 포르투갈어는 '봉 디아' 그리고 '아브리 가도' 이것만 알고 도착했는데, 프랑스어를 사용하다 오니, 의외로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이 꽤나 있었다. 예를 들면 슈퍼에서 점원이 ' sac' 뭐라 하는 것 같아서 안 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비닐봉지가 필요하냐는 말이었다. 거리에 간판이나 지하철의 안내를 읽어도 다는 모르지만 단어가 프랑스어와 비슷한 부분들이 있어서 대충은 이런 말을 하겠구나- 정확한지는 모른다- 하는 감이 오긴 했다. 영어보다는 프랑스어에 가까운 라틴어 계통 언어가 맞는 것 같다. 듣기로는 포르투갈어는 문법이 꽤나 복잡하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났던 모든 포르투갈어 사용자들은 하나같이 언어능력이 뛰어났다: 말인즉슨 이들은 기본적으로 포르투갈어/영어/스페인어/옵션으로 프랑스어까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가이아 지구 골목길에 있는 5유로짜리 점심식사를 하는 식당에 가도  매일 바뀌는 '오늘의 메뉴'를 가볍게 포르투갈어/영어/스페인어/프랑스어 4개 국어로 수프/메인 요리 (대구살 튀김)/하우스 와인/케이크 요렇게 번역해서 식당 앞에 붙이시니 말이다. 강변의 식당에도 4개 국어가 동시에 적힌 메뉴판이 많았고 서빙하는 분들도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 물어보고 거기에 맞춰서 응대를 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응대의 수준도 단순하게 음식을 주문받고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손님과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할 수 있는 정도니 대단했다. 다른 와인바에서는 내 옆 테이블에 프랑스어만 할 줄 아는 노부부가 앉으셨는데 그들은 프랑스어로, 서버는 포르투갈어로 모든 대화가 통하더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인데도 멀리 대서양을 건너서 식민지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서 만들 만큼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구글링 하면 나오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나라들. 포르투갈은 전 세계를 아우르던 나라였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면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프랑스어가 버겁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배웠기 때문에 그 이웃 언어가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건 감사한 일이다. 누군가 언어가 문화를 보는 창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영어를 알고 스웨덴에 공부하기 위해 도착했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영어랑 정말 비슷한데 이 사람들은 영어단어들을 붙여서 쓰네, 대충 읽으면 이런 뜻이겠네 싶어서 뿌듯해했다. 프랑스어가 익숙해지니 이웃나라 언어들도-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포르투갈어- 상대적으로 심리적인 장벽이 낮아진다. 까막눈이지만 완전한 까막눈이 아니라는 사실이 막연한 불안감을 상쇄시켜 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또 주변에서 5개 국어를 하는 수많은 언어 능력자들을 보면서 주눅이 들었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포르투갈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 스페인어/프랑스어는 아주 비슷한 언어들이라 상대적으로 쉽게 배울 수 있다. 어차피 단어는 비슷하니 문법과 구조만 익히면 의사소통은 가능해지는 것 같다. 한국에서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던 내가 전혀 다른 그룹의 5개 국어를 배우는 것과는 시작 자체가 다르니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시작이 다른 것이니, 왜 이 친구는 1년 만에 프랑스어를 이렇게 잘하는데 나는 3년을 살아도 왜 어버버버 한 것인지 비교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그냥 더 열심히 배우고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비슷한 의미로, 우리가 한자를 기반으로 한 단어를 알기 때문에 중국어나 일본어가 상대적으로 쉬운 것과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굳이 문화가 다른 유럽으로 옮겨온 건 내 선택이니 괴로워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프랑스어를 다시, 공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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