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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로 살면 안 되는 건가

-문과남자의 과학공부. 유시민

by 파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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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신기한 학문이다. 신기하다는 건,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생겨나는 감정이다. 과학 현상으로 생겨나는 모든 것들이 나는 신기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그냥 과학이라는 과목으로 전체를 배웠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지구과학 생물 물리 화학으로 나누어 선택을 하라 했다. 물리와 화학은 어려워서 그나마 쉬워 보이는 지구과학과 생물을 택했다. (유시민도 그랬다 한다)

지구과학 첫 시간 내가 배운 것은 ‘지구는 둥글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가 그날 배운 것이었는데, 고등학교 첫 시간이라 예습을 한다고 전날 미리 참고서를 보고 갔다. ‘저 멀리 바다에서 들어오는 배가 전체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돛대부터 보인다’라고 참고서에 본 것을 이야기 했다. 교사는 신기한 듯 쳐다봤고,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반응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 이후 지구과학 과목은 더 이상 예습도 복습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생물은 재미가 있어서, 한때 생물학과를 지원할까 싶기도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하나는, 가을에 낙엽이 지는 이유가 ‘떨켜가 생기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표현이다. 가을이면 온 산을 물들이는 단풍과 소복이 쌓이는 낙엽의 낭만을 그렇게 멋대가리 없이 표현하다니! 그 이후로 생물도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가에서 과학 코너에 한동안 머무르는 까닭은, 정재승이나 김상욱, 최재천(유시민이 언급한 이 세사람은 유명세가 있고, 어려운 과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착한 사람들이다) 의 책을 읽는 것은 여전히 내가 모르는 신기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최재천의 책에서 본 가장 쇼킹한 이야기는 ‘나는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숙주이다’는 것이다. 내가 내 의지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DNA가 시키는 것이었다니. 몇억의 정자 중 단 하나가 난자와 만나 내가 된 것이니 나는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고 알려주던 생물학자도 있는데, 내가 단지 숙주라고? 이런!

정재승은 또 어떠한가. 알쓸신잡에서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산도 제승당에서 이순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과학과 수학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두고두고 신기하다. 김상욱 또한 어려운 물리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렇다고 그걸 알았다고 하긴 뭐하지만, 어려운 단어 하나 없이, 쉬운 말로 이야기하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절대 흥분하지 않고 조곤조곤 말하는 그는 통달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들을 나는 다른 인문학 작가들 만큼이나 좋아한다.

나는 나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아는 것이 재미있고 의미 있다. 그래서 책을 고르러 가면 늘 과학과 심리학, 그리고 소설 코너에 오래 머문다.

유시민은 그들과 어울리며, 자신이 과학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어려운 말들을 그 나름의 쉬운 말로 소개하고 있으나, 나는 그의 말도 어렵다. 과학은 여전히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바보임을 아는 바보로 살고자 한다.

중요한 건 ‘바보’를 면하겠다는 결심이다. 파인만의 ‘거만한 바보’는 자신이 바보인줄 모른다. 죽을 때까지 ‘바보’여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게 살고 죽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다. 그러나 자신이 ‘바보’였음을 알고, ‘바보’를 면하는 게 ‘바보’인 줄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 낫다. 부끄러움은 잠시지만, 행복은 오래간다.

유시민처럼 인문학에 통달한 그이니 과학을 보태면 통섭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문학만으로도 그에게 미칠 수 없다. 굳이 과학까지 보탤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지금처럼 인문학에 통달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얻어들으며 ‘바보’인줄 아는 바보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내가 바보인줄 아는 바보. 그게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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