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에 진심인
추운 겨울이 조금씩 물러나는 게 느껴진다. 하루가 다르게 해가 길어지고, 털옷을 집으려다 머뭇거리게 되는 3월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왔다가 추위에 몸을 떨면서 후회를 해도, 결코 겨울 옷을 입을 수는 없는, '3월'은 분명 '봄'이다.
어느새 매화가 피었다 지고, 진달래가 피었다. 목련도 말간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다. 이제 진짜 봄이다.
산길에 핀 진달래를 통영 사람들은 참꽃이라 부른다. 중학교 가정시간에 진달래 화전을 부친 경험이 있다. 찹쌀가루를 동그랗게 빚어 기름에 지지고 뒤집어 익은 면에 진달래 꽃을 예쁘게 펴서 올려놓았다. 말갛게 익은 하얀 찹쌀 위에 진분홍 꽃 한 송이. 인천에서 화전은 눈으로 먹는 음식이었다.
봄이면 통영 사람들은 진달래, 아니 참꽃을 따러 산으로 간다. 꽃송이를 뜯어 모아 집으로 가져오면, 꽃송이 안의 수술을 일일이 손으로 집어 떼어낸다. 꽃잎은 먹어도 꽃술은 먹는 것이 아니라면서.
통영의 화전은 인천처럼 화전 하나에 꽃 한 송이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한 입 베어 물면 꽃향이 입 안에 퍼질 정도다. 화전 한 장에 들어가는 꽃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수술을 다 덜어내면 깨끗하게 씻는다. 꽃에 찹쌀가루를 넣고 살살 버무린다. 꽃에 묻은 물기로 충분히 반죽이 되기 때문에 물을 더 넣을 필요는 없다. 반죽을 둥글게 빚어 기름 두른 팬에 올린다. 불은 절대로 세게 하면 안 된다. 꽃의 색이 죽기 때문이다. 약한 불에 올려서 은근하게 오랜 시간 익혀낸다. 꽃의 색을 살리고 쌀가루는 익는 그 지점의 온도. 이건 고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성질 급한 나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다. 이웃의 음전한 언니는 매년 참꽃화전을 부친다. 우리는 저절로 터져 나올 탄성과 감사의 마음을 장착하고 부름을 기다린다. 봄은 입으로 느껴야 제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