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났다

빨간 날

by 파란하늘

설 연휴가 끝났다.


시집살이 23년 동안, 설이 다가오면 미리미리 장을 봐두었다가 설 전날이면 종일 음식을 만들었다. 만두를 빚고, 전을 부치고, 튀김을 하고, 나물을 볶고, 국을 끓이고, 생선을 찌고 고기를 재웠다. 제사를 지내는 집이 아닌데도 그랬다. 명절엔 명절 음식이 있어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요구였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음식의 양은 점점 줄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명절 음식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학교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난 아이들은 명절에 와서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지내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음식을 해도 다 먹지 못하고 버리기 일쑤였다. 점점 음식을 하지 않게 되었다. 평소에 잘 먹는데, 기름진 음식을 굳이 힘들게 할 필요가 뭐 있느냐며 장 보는 것부터 말렸다.

친정이 멀어 처음부터 명절에는 오가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명절이면 온 식구가 할머니 댁에 모여 며칠씩이나 같이 자면서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하고 제사를 지내고 밥을 먹었다.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도, 찾아뵈어야 할 친척 어른이 계신 것도 아니어서, 힘들게 음식을 해 먹기보다 편하게 뒹굴거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다소 게으른 가족 구성원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시어른들이 돌아가시고, 첫 설에 큰 아이가 마침 근처에 새로 생긴 초밥뷔페에 가자 했다. 설에 무슨 외식을 해? 오늘 같은 날 문 여는 데 없다며 전화를 하니 영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 가자!(식구들 모두 초밥을 좋아한다) 도착한 초밥뷔페 입구는 장사진이었다. 1시간을 기다리며, 설에 식당을 찾는 사람이 우리만이 아닌 것에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큰 아이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갔고, 작은 아이는 군대에 가서 집에 부부 둘만 설을 맞게 되었다. 우연히 마카오 직항 기념 항공권을 보게 되어 썰렁한 집에 있느니 여행을 가기로 했다. 설 명절에 여행이라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하며 가슴이 부풀었다. 그러나 비행기는 만석이었고, 마카오며 홍콩엔 우리 같은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분명 예전과 달라졌다. 명절이 명절이 아니고 그저 빨간 날인 연휴. 이번 설에도 큰 아이는 크로아티아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 집에 없다. 설 전날 집에 온 작은 아이는 하룻밤을 자고, 아점으로 같이 떡국을 먹었다. 산책 삼아 나간 부산 광안리 바닷가엔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근처 식당에서 장어초밥을 저녁으로 먹고 아이는 자기 집으로 갔다. 명절에도 식당은 문을 열고,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난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들이 늘고, 식구들이 모이더라도 하루 이상 머물지 않는다.


뭔가, 몸은 편하고 마음은 서늘한, 연휴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