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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우리 가족 은유

by 파란하늘

12년째 목요일 저녁에 만남을 이어가는 독서모임이 있다. 책갈피. 우리는 우리를 책갈피언이라 부른다. 한 달에 한 번 책 읽고 독후감 쓰기로 만나기 시작해서 몇 해전부터는 매주 이벤트를 만들고 글을 써오고 있다. 올해는 첫 주 그림책, 둘째 주 시와 느낌 쓰기, 셋째 주 영어 원서 같이 읽기, 넷째 주 그달의 책 읽고 독후감 쓰기를 하기로 했다.


1월 첫 주에 만나 그렇게 하자 정하고, 1월은 방학이다. 그 방학 동안 책갈피언 네 명은 치앙마이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 되면 꺼내기로 하고, 2월 첫 주 그림책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한다.

어제 향기 선생님이 가져온 그림책은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였다.


아침이면 일어나라고! 밥 먹고 학교 가라! 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목청 좋은 엄마를 불곰에 비유했다. 학교에서 가족에 대한 글짓기를 하며, 엄마가 왜 좋은지 몰랐던 아이는 외가에 가서 어릴 적 엄마 사진을 보고 이렇게 작고 이쁜 엄마가 왜 불곰이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렇게 찬찬히 관찰한 엄마는 하루종일 일하느라 다리가 붇고 덩치가 커졌던 것이다. 불곰의 포효에 겹친 속내는 '피곤해'였다. 결국 아이는 가족에 대한 글짓기를 다시 한다. '엄마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줘서 좋다'라고.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이 그렇게 억척스러운 모양이다. '엄마'의 대명사는 그런 게 아닌데 말이다. 책갈피언의 발제를 옮겨본다.

-왜 불곰이 되게 하냐고, 소리 지르기 전에 알아서 잘들 하면 되지

-그 불곰은 왜 아빠를 안고 달렸을까?

-꼭 젊었을 때가 이쁜가? 나는 지금이 훨씬 좋은데

-왜 하필 불곰에 비유했을까? 호랑이도 있고, 사자도 있는데

-엄마는 왜 그 시간에 그 숲에 있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러다 '엄마는 불곰이다. 소리를 지르면 얼굴이 불곰처럼 벌게지기 때문이다'처럼 가족에 대한 은유를 해보기로 했다


라떼

남편은 고양이다. 잡기가 힘들다

아들은 강아지다. 나를 잘 따르고 좋아한다


향기

남편은 수학책이다. 재미없고 딱딱하다. 정해진 것만 한다. 남편은 물이다. 맛없고 멋없지만 꼭 필요하다.

큰 아들은 깊은 바다다. 넓은 속마음이 있는데, 가끔씩 내가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작은 아들은 푹신푹신한 곰인형이다. 늘 안아주고 옆에 두고 싶다. 최신 컴퓨터다. 머리가 팽팽, 눈치가 9단이다.


나무처럼

남편은 마른 잎 가진 도토리나무다. 유난히 소란스럽다.

큰 아이는 동백나무다. 태몽을 커다란 동백나무 꿈을 꾸었는데,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푸른 동백나무에 핀 빨간 동백꽃 같다.

작은 아이는 대나무다. 부러지지 않고 주변에 맞춰 휠 줄 안다. 상황에 대처를 잘한다


파란하늘

남편은 남편이다. 아들이 아닌, 남이 아닌, 가장으로서의 '남편'이기를 바란다.

딸은 베짱이다. 일하기보다 놀기를 더 좋아한다

아들은 뜨거운 감자다. 사랑하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족에 대한 은유에 이어 책갈피언에 대한 은유도 해본다.


라떼는

-열정의 화수분이다. 열정의 화신이라서

-따뜻한 온돌방이다. 군고구마도 있고, 정원에서 꺾어와 꽂은 꽃다발도 있고 함께 나누어 먹을 떡과 과일이 가득한.

-큰 나무 아래 놓인 벤치다. 나무 그늘에서 쉬어가는 편안한 사람이다.


향기는

-재미있고 신기한 긴장이다.

-아카데미다. 늘 무엇이든 배우고 익히는 사람이다

-바람이다. 따뜻하고 시원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바람 같아서 기다려진다


나무처럼은

-프랑스자수이다. 한 땀 한 땀 곱게 수놓은 것 같은 사람

-장금이다. 더 예쁘게 맛있게 하는 사람이 있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늘 그 자리에서 굳건히 자리하며 아낌없이 베푸니

-나무다. 늘 변함없이 한결같이 우리에게 그늘을 만들어준다


파란하늘은

-초록을 품은 파아란 하늘이다.

-손에 들고 있는 나침반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늘 가리키고 있다.

-반짝반짝 모래알이다. 작게 보이지 않게 숨어 있어도 빛나고 있다


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책이 아니다. 0세에서 100세까지. 함께 나눌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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