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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얼빈, 안중근

중국으로 마실

by 파란하늘

하얼빈에 관광을 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얼빈에 갔다면 반드시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이토 히로부미 시해의 현장, 하얼빈 역이다. 하얼빈 역은 엄청 컸다. 공항까지 이어진 역이었고, 중국 각 지역은 물론,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지나는 곳이다. 하얼빈 국제공항보다 몇 배나 컸다.

탑승객이 아니면 역내로 들어갈 수 없으나, 유리창으로 볼 수 있도록 저격 현장 바로 앞에 기념관이 있다. 하얼빈 역 남쪽 광장으로 가야 한다. 역의 규모가 커서 우리끼리 갔으면 좀 헤맸을 것이다. 선배의 중국인 기사가 안내해 주어 바로 찾았다.


입장료는 없으나, 여권 제시와 짐 검사를 한다. 음악도 없이 조용했다. 왠지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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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서 있는 이 분이 안중근 의사이다. 머리 위 시계 9시 30분은 역사가 이루어진 그 시각이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기억하자. 앞에서 잠시 묵념하고 전시물을 그대로 지나 역사 내부, 저격 현장부터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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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저기다. 기차에서 내린 이토 히로부미가 선 자리는 네모 타일로, 안중근 의사가 총을 꺼내든 자리는 세모 타일로 표시했다. 꽤 가까운 거리다. 두려움도 없이, 오로지 적의 수장을 죽이려는 마음 하나로, 멀리도 아니고 저리 가까이 다가갔구나.

하얼빈에서 겨울을 지낸 선배는 "와, 이런 날씨에 어떻게 독립운동을 했는지, 여기 진짜 춥거든. 겨울엔 밖에 안 나가, 아니 못 나가" 했다. 온갖 고생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그런 분들 덕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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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로서 남편으로서 마지막 당부의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를 받았을 어머니와 아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싶다.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테니.

신부가 되게 하라던 그의 장남은 어린 나이에 독살당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상해임시정부에서 이 가족을 거두었으나,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이후 상해 임시정부가 이들을 두고 망명해 버려 이들은 상해에서 구걸하며 살았단다. 그런 안의사의 아들에게 일제가 손을 내민다. 이토 히로부미 위령제에서 이토의 아들에게 사죄하면 잘 살게 해 주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가족을 몰살하겠다고.

아비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던 안의사의 막내아들 안준생은 살기 위해 위령제에 가서 고개를 숙였다. 그 일로, 조선의 독립군들은 그를 변절자라며 죽이려 했다 한다. 김구 선생마저도. 버리지 말고 잘 챙겨줬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물론, 그들도 형편이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함께였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안중근 의사는 정말 훌륭한 분이시다. 그렇다고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아낸 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대의를 위한 것만 옳은가.


(우리는 효녀 심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부모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효도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배운 세대다. 그러나 이제 맹목적인 흡수보다는 비판적 사고를 지니는 시대가 되었다. 눈먼 아버지를 두고 떠나는 것이 과연 효도일까라는 반대의견에 대한 수용도 가능해졌다.)


이런 훌륭한 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인 적의 원수의 위령제에서 아버지의 행동을 사과한 아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과연 그 아들 안준생이 오롯이 져야 하는가?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왜 국가는(당시 뭐 국가가 있진 않았지만, 임시정부라도 정부 아닌가?) 책임을 지지 않고, 당시 김구 선생은 왜 그를 죽이라고 당부할 만큼 분노했는가? 왜 임시정부는 일제의 횡포 앞에 그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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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일은 어떻게 덮어도 잘못된 일임이 드러난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일본인들로만 가득한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내렸어도, 시신을 못 찾게 숨겨야 했을 정도로 그들은 파렴치했고, 그는 자랑스러운 승리자였다.

그의 모든 걸음을 존경하고 우러른다. 하얼빈에서는 이 분의 행적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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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가. 중앙따지에 옆에 작은 공원이 있다. 자오린(兆隣) 공원이다. 중국의 독립운동가 리자오린의 유택이 있어서 그리 부른단다. 이 공원은 안중근 이사가 거사를 치르기 전 찾았던 곳이다. 그는 여기 묻혔다가 독립된 조국으로 가고 싶어 했다. 비록 꿈은 이루지 못하셨으나, 그의 흔적이 이 공원에 있다.

견지. 뤼순감옥에 계시던 때 쓰신 글을 비에 새겼다. 3월에 돌아가셨으니, 한 달 전 쓰신 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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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당. 이건 돌아가시기 얼마 전 쓰신 건가 보다. 독립운동을 맹세하며 손가락을 자르는 용기도 나는 흉내 낼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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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지쳐 공원 앞 카페에 들어갔다. 이땐 몰랐지. 여기가 안중근 의사가 거사 전 동지들과 사진을 찍은 사진관 자리란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업종이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은 안데르센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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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흉상이 왜 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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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장식과 친절한 직원들 덕분에 오랜 시간 앉아 언니와, 오늘 만난 안중근 의사와 오래전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커피도 훌륭했다)

우리나라처럼 들어가자마자 시원할 정도의 에어컨이었다면 추워서 오래 앉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딜 가도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 놓는다. 그게 과연 좋은 걸까? 하얼빈 어디를 가도 에어컨을 세게 틀지 않는다. 조금 앉아 있으면 적당히 보송해지고 시원해지는 정도, 그게 꽤 마음에 들었다.


안중근,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도시, 그의 흔적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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