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여행
남편과의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 장성한 아이들이 곁에 없으니 부부뿐이다. 여름휴가를 맞았으나, 아이들 모두 같이 보낼 수가 없다. 우리끼리 가자.
남쪽 바닷가에 살면서도 동해로 가자며 강릉에 가잔다. 6시간 정도 걸리니 교대로 운전하기로 했다. 토요일에 느지막이 일어나 남편이 남은 일거리를 처리하는 동안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3박 4일 동안 느긋하게 뒹굴거리기로 했으니 책이 한 권 있어야 할 것이다.
차가 경주를 지난다. 간단하게라도 점심을 먹자 하여 경주 황리단길 어느 작은 식당에서 냉면을 먹기로 했다. 폭염에도 사람들이 가득한 황리단길엔 주차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겨우 찾아간 주차장에 이중주차를 했다. 주차비가 1시간에 4,900원이다. 골목에 자리 잡은 냉면집은 다행히 한산했다. 햇살이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면 황리단길을 좀 걸어도 좋으련만, 더위에 아무런 감흥도 없다. 게다가 냉면도 그리 입에 맞지 않았다. 면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남편 인상이 구겨졌다.
길을 재촉한다. 첫날은 부산과 강릉 중간쯤인 울진에서 머물기로 했다. 서둘러 갈 이유가 없으니 백암온천에서 하루 자기로 했다. 애들 어릴 때는 시부모님과 온천에 자주 다녔다. 식구들이 다 온천을 좋아하는데, 코로나 이후로 온천에 가 본 적이 없다고 이참에 가보자 하였다. 옛날에 다친 사슴의 상처가 나은 것을 보고 스님이 온천물로 중생을 치료하며 포교를 했다 한다. 백암온천은 예전에 성황을 이루었다는데, 요즘은 문 닫은 숙박업소가 여기저기 흉물이 되고 있다.
급하게 구한 숙소는 여인숙 수준이었다. 좁기도 좁았고, 침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펀지 요는 탄력을 잃어 흐물거렸고, 깨끗하지도 않았다. 짜증이 올라왔으나, 여행 첫날이니 삼키기로 한다. 입욕료는 1만 원이라 붙어 있던데, 투숙객은 숙소 지하에 있는 대중탕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시설은 낡아도 온천물이 진짜 좋았다. 보들보들 미끌미끌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가까운 데면 자주 오겠다는 남편은 아까 투덜거리던 사람 답지 않게 싱글거린다. 다음날 퇴실하기 전에 다시 물에 몸을 담갔다.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돌았다.
온천물 하나로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