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상하이
남편 상하이 발령은 연초에 이루어진 일이나, 공표는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공표가 있긴 전까지는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엄포(?)가 있었다 한다. 회사 관련된 사람들과 주변에는 함구하고 친정아버지와 애들, 시댁 시누이에게만 미리 말해두었다. 공표가 늦어지는 이유가 발령 취소일 수도 있어서라니 주변에 알리기도 애매했다. 준비랄 것도 없이 집 정리만 하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사실 벅찼다. 뭐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했어야 하는데, 두 집 살림을 들고 내고 쓸고 닦는 일로도 손가락이며 손목 무릎 관절에 통증이 생길 정도였다.
6월 중순이 되어서야 공표가 났다. 걷기 모임과 독서 모임 사람들에게 사정을 알렸다. 걱정과 설렘이 공존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외국 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과연 그렇게 좋기만 한 일일까 싶었으나, 나의 이런 걱정 또한 신체적 부침에서 비롯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일이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자주 만나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알릴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예 떠나는 것도 아니고, 살던 집을 그대로 두고 가는 상황이라 일 년에 몇 번은 들어올 일이 생길 것이라서, 통영 사는 이들에게는 내가 부산에 주로 살았던 지난 몇 달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친정에 고모가 친정아버지에게 들었다며 “너는 어떻게 말도 안 하고 가냐?” 했다. 인천에서 통영은 다섯 시간이 걸린다. 상하이는 비행기로 두 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어쩌면 물리적 거리는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을 떠난다는 심리적 거리 때문에 섭섭했던 모양이다. 서로 오래 떨어져 지내 피붙이라고 해도 그동안 일 년에 한 번도 못 보는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원래 이별을 길게 하는 편이 아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인연이라는 것이 외부적 힘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만날 사람은 어찌해서도 만난다. 인연의 총량이라는 것도 존재함을 안다. 언제고 다시 돌아갈 곳이기에, 언제고 다시 만날 사람들이기에 잠시 그렇게 조용히 떠났다 돌아갈 것이란 마음에 그냥 마음 편하게 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