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상하이
"어, 배낭 어딨 지? 거기 여권 들었는데?"
지인의 남편이 택시 기사다. 그 택시를 타고 공항 거의 다 와가는데 갑자기 남편이 사색이 되었다. 여권을 비롯해 관련 서류들까지 넣어 놓은 배낭이 없단다. 출국에 가장 필요한 짐이었는데, 택시를 탈 때도 배낭은 없었다고 기사가 알려주었다. 집에 두고 온 것이다.
당일 아침까지 집 정리를 하느라 바빴다. 월요일에 부산 집 빼고 통영 집으로 이사했고, 화요일에 상하이 보낼 짐들을 분류해서 빼놓고 정리, 수요일에 해외이사 업체가 와서 박스 만들어 보내고, 그 이후로는 남은 짐들을 정리 정돈해야 했다. 집을 두고 가고 그 안에 우리 살림살이들이 남아 있으니 정리는 필수였다.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들고 갈 짐을 싸고 쓸고 닦는 일은 금요일 출국 당일 아침에서야 겨우 끝이 났다. 그런 정신으로 9시 택시를 탔다. 평소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는 철두철미한 남편으로서는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다시 집에 갔다 올 시간은 없었다.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출발 시간이 12시 반이었다. 편도 시간도 간당간당했다.
같은 아파트에 20년 넘게 살았다. 친한 언니에게 전화했더니 하필 대구란다. 집에 있을 만한 언니로 15층 언니가 생각났다. 초등 교사 퇴직하신 분인데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어 전화번호도 없다. 보이스톡으로 전화하니 마침 집에 있다 하신다.
“선생님, 저희 집에 좀 가 봐주세요, 저희가 여권 들은 배낭을 두고 온 것 같아요”
다급한 내 목소리를 들은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고 우리 집으로 가셨다.
“여기 예쁘게 있네” 하신다.
택시기사가 제일 가까이 있는 택시기사를 섭외했다.
“선생님, 택시가 아파트 앞에 갈 거예요, 거기 태워 보내주세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살았어요.”
기사님은 공항에 도착해 주차하고 우리와 같이 다음 택시를 기다려주었다. 계속 자책하고 있는 남편에게 금방 올 거라고, 전에 태웠던 손님도 그런 적 많다며 위로해 주었다. 처음 본 남편에게 형님 형님 하며 다독거리는 그이가 고마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입이 바짝바짝 말랐을 것이다. 택시기사와 함께 공항 밖에서 택시가 올 쪽만 바라보았다.
동방항공 카운터에 길게 늘어선 줄이 사라지고, 카운터 앞이 텅텅 비었다. 직원에게 몇 시까지 수속하냐 물었더니 11시 50분까지 가능하다 했고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괜찮다고 시간 충분하고 웃어주었다, 마침 도착한 여권으로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에 앉을 여유까지 있었다. 금요일임에도 여행객이 그리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인천공항이 아니고 김해공항이라서 더 다행이었고, 마침 집에 계셨던 15층 언니와 급하게 택시 섭외해 준 기사님께도 감사했다.
앞으로도 착하게 살자며 탑승구 의자에 앉아 남편과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