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 글감으로 쓰는 조각 글.
제법 쌀쌀했던 늦가을, 대학가의 오래된 술집에서 처음 만난 너는 삐죽한 내 마음에 들어오기에는 아직 너무 반듯한 네모였다. 누군가 옆에서 밀치고 흔들어도 제자리를 굳게 지킬 것 같은 그런 단단한 네모였다. 그때의 내 마음은 뾰족한 모서리가 뿔처럼 여기저기 나있는, 그래,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달랐고, 그래서 나는 너를 마음에 들일 수 없었다.
그 해 겨울은 유독 추웠다. 두꺼운 옷을 껴입고 몸을 녹여도, 삐져나온 모서리가 시렸다. 외로웠다. 꼭 사랑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무엇을 해도 공허하고 비어있는 듯했다. 찬 바람이 불면 흔들렸다. 이리저리 흔들리다 부딪히고 넘어졌다. 그렇게 모나고 날 서있으면서도 약했다. 그래서 네가 부러웠다. 강한 바람이 불어도, 바닥이 얼어도 그 자리에 안정되게 서 있는 너의 모습이.
유독 추웠던 겨울이 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한 봄이 왔을 때, 너는 내 모서리를 품어주었다. 나의 마음보다 훨씬 크고 단단한 상자가 되어 나를 품어주었다. 그리고 너는 나를 마음에 들였다고 했다.
뜨거운 여름이 되었을 때 나는 너를 아프게도 찔러댔다. 가시가 나있는 고슴도치처럼 날이 서있는 나를, 아픔을 견뎌가면서도 안아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찔러 상처를 내더라도 상자에 박혀있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굳고 단단한 마음 때문에 나의 모서리들은 점점 둥글어졌다. 가장 뾰족한 부분부터, 그리고 가장 날이 서있는 부분부터 점차 깎여갔다. 그렇게 상자 속에서 비어있던 공간들도 줄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너와 나는 점점 비슷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점점 더 마음을 맞추었다.
그리고 지금, 너는 나의 마음에 완전히 들어찼다. 마음에 가득 들어찬 너는 너무도 꼭 맞아서 이제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너는 나의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