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비유, 느낌, 상상
INFJ의 성격 특성은 여러 개가 있을 테지만 내게 가장 크게 와 닿는 점을 키워드로 이야기하라면 세 가지이다. 바로 비유, 느낌, 그리고 상상이다. 사실 주변에서 INFJ를 만나기 쉽지 않아서,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모습이자, INFJ들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 물론 나는 전공 특성상 NF가 많이 발달된 INFJ라는 점을 밝힌다.
우선, 나는 관계에서의 통찰과 생각을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통찰한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했다. 때로는 여러 생각이 길어져서 잠들지 못하는 날들도 더러 있다. 특히 일찍 자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생각이 꼬리를 물어 잠들기 어렵다.
그 예로 오늘은 아침 수업이 있었고, 어제는 여느 날처럼 쉽게 잠들기 어려운 날이었다. 어렸을 적 만화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은 항상 양을 세다 잠이 들고는 하더라. 울타리를 뛰어넘는 양을 한 마리, 두 마리 세다 보면 어느새 잠에 드는 모습이 참 신기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잡념이 아닌 단순한 생각을 집중해서 하기 때문이겠지. 마치 마음 챙김 명상을 하듯이 말이다. 어제는 나도 그것에 도전해보려 했다.
‘그래도 양보다는 고양이가 귀엽고 좋겠지? 고양이가 담벼락을 뛰어서 건너는 상상을 해야겠다.’
누가 과연 양을, 아니 고양이를 세며 이런 구체적인 상상을 할까. 담벼락의 높이, 두께, 그리고 건너는 고양이의 체격, 무늬, 색까지. 이런 구체적이고 생생한 상상을 하다 보니 오히려 잠이 안 오는 것이다! 결국은 어제도 1시간 동안 고양이가 뛰어다니는 상상을 하다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이런 생생한 상상은 내게 많은 영감을 주고는 한다. 글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쓴다거나, 그림을 그릴 때.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가구를 샀을 때 집의 전반적인 느낌을 상상할 때. 다양한 상황에서 이점이 있다.
두 번째 특징인 비유적인 표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다룰 때 특히 유용하다. 지금까지 써왔던 글에서 부정적 정서가 쌓이는 것을 풍선에 비유한 것처럼, 비유는 내가 느끼는 모호한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에 좋은 도구이다. 특히 내면의 갈등이 많고 항상 생각이 복잡한 나에게는 좀 더 직관적으로 이것을 전달할 도구가 필요하다. 상담을 할 때도 좀 더 내담자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다.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기 쉬운 나에게 비유란 적절히 주변과 소통하고, 현실과 닿아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환경을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점은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보기 어려운 NF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장단점은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런 내 모습을 참 좋아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을 그 당시 나의 상황과 연결 지어 기억한다. 3년 전 코타키나발루에 갔을 때 해변가에 누워 계속 반복해서 듣던 음악이 있었다. 혁오의 <TOMBOY>라는 노래였다. 노래의 가사는 방황하는 청춘에 대한 노래이지만, 나에게 이 노래는 여유롭고 한적한 해변에서의 하루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도 어디론가 떠나 자유롭고 싶을 때는 이 노래를 듣고는 한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볼 때에도 스토리나 영화의 장치들 보다는 영화가 주는 느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계속해서 흐린 날씨가 나오거나, 비가 오는 배경의 영화는 잘 보지 못한다(나는 이것을 ‘회색 영화’라고 부른다). 오히려 나에게는 색감, 주인공이 느끼는 주요 감정들, 그리고 배경음악과 어우러져 전해지는 느낌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스토리가 탄탄하지만 담백한 영화들을 보다가 그야말로 숙면을 취하고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영화나 노래를 들었을 때의 그 느낌을 기억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을 때 어떤 콘텐츠를 보고 들으면 될지가 분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위해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는 내가 만들어놓은 플레이리스트가 많이 있다. '파란 하늘', '사극풍', '비 오는 날' 등 소재도 다양하다. 맑은 날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싶을 때는 '파란 하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면, 그 날의 설레는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쓸수록 INFJ들이 MBTI에 관심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어떤 MBTI 이론서나 자료들을 보아도 참 모호한 이야기만 다루고 있다. 영감, 통찰, 그리고 직관에 관한 것들이다. 물론 이런 단어들이 직관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만 와 닿기에는 어려운 말들인 것도 사실이다. 모든 성격특성이 MBTI로 이해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가진 특별한 점들이 같은 유형 안에서는 공유되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