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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멀 IMEOL Sep 14. 2019

해결과 경청 사이, 그 어딘가.

상담자의 적절한 거리

이번 학기 듣게 된 수업의 오리엔테이션 시간이었다. 


"여러분이 상담자로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탁월함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예를 들어 무조건적으로 경청을 잘한다고 해서 상담자로서 탁월한 것은 아닙니다. 경청뿐만 아니라 문제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모습도 필요하죠. 저는 늘 상담자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내담자의 환경이 될 사람들이라고."


최근 들은 말 중, 가장 여운이 남고 뇌리에 박히는 말이었다. 내담자를 가르치려고 해서도, 무조건 경청해서도 안 되고 좋은 환경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말. 


연구를 하다 보면 보호 요인이라는 개념을 흔히 접하게 된다. 심리적 고통을 덜 경험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사람을 보호하는 요인을 의미한다. 예를 들자면 개인적인 요인인 자존감이라던가, 사회적인 지지 등이 있을 것이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지탱해주고, 바로 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들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목표 의식, 또 누군가에게는 가족이나 친구가 그런 요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담은 어디쯤 위치하는 요인이어야 할까?


여러 사람들에게 상담을 받아보았지만, 상담자마다 지향하는 방향에는 차이가 있다(그래서 자신과 잘 맞는 상담자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 중심의 상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경청해주는 상담, 내가 갖고 있는 비합리적인 사고를 깨닫게 해주는 상담. 이러한 상담 이론들이 지향하는 바를 떠나서, 내게 가장 힘이 되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힘들 때 내가 찾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었다. 


가족에서 나는 주로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고는 한다. 조금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내가 느끼는 바는 그렇다. 나는 혼자 살고 있고, 나머지 가족들은 고향에서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모두 내게 전화를 해서 털어놓는다. 


"어제 네 동생이 말이야.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니?"
"며칠 전에 아빠가 나한테.."
"엄마가 오늘 집에서.."


주기적으로 이런 전화가 빗발치는 기간이 있다. 그럴 때 나는 통화를 끊고는 몰려오는 감정들을 견뎌내지 못하고 주저앉아 울고는 한다. 그리고 내 감정을 쏟아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데서 오는 무기력함은 나를 더 아프게 한다. 하지만, 상담을 시작하고 나서는 최후의 안전망이 생긴 기분이었다. 내가 꼭 힘들 때마다가 아니더라도, 정말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때 찾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안전한 곳이 나의 환경에 있다는 것은 정말 안심이 되는 일이다. 


사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줄 수는 없다. 상담자가 한 이야기를 내담자가 받아들이는 것부터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상담자가 따라다니면서 모든 일들을 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무조건 듣기만 한다고 해서 내담자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상담자가 서 있어야 할 곳은 문제 해결과 무조건적인 경청 그 사이 어딘가 일지 모른다. 내담자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무조건 듣기보다 그곳에 지지적인 환경으로 있어주는 것이다. 


마라톤 같이 긴 삶을 혼자 달려 나가다가 너무 지치고 힘들 때, 잠깐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되어주는 것. 그것처럼 주변에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로 있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상담자로서의 적절한 거리가 아닐까 싶다.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적당한 거리에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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