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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멀 IMEOL Sep 16. 2019

그냥 아무나 돼!

나는 나로 존재하기 때문에 소중해.

"어떤 사람이 될 거예요? 어른이 되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한끼줍쇼, JTBC 중>


내가 어렸을 때 이 말을 들었더라면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장녀'로 자라왔다. 흔한 어리광도 잘 부리지 못했다. 동생들의 잘못을 대신해서 혼나고, 체벌을 받았다. '역시 너 밖에 없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으며 자랐다. 때로는 극단적인 기대감을 담은 말들을 듣기도 했다.


"너는 꼭 성공해서, 우리를 호강시켜주어야 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모두가 바라는 보통 궤도의 삶, 그곳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내 인생에서의 성공은 스스로 정의한 행복과는 달랐다.

그래서 내게는 아무나 되라는 말이 너무도 벅차올랐고, 심장이 뛰었다. 성공하지 않아도, 착하지 않아도, 그냥 아무나 되어도 된다니!


'우리 애는 착하고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어요.'


이렇듯 은연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녀가 소위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만으로 기대를 버렸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말 자체가 아플 때가 있다. 만약 내가 착하지 않다면? 건강하지 않다면? 그 때는 사랑 받을 수 없는 것일까? 아빠는 내게 늘 말했다.


"아빠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 그리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해"


또 엄마는 동생들과의 갈등이 심해지는 날이면 말했다.


"너라도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아 너무 다행이야."


이런 기대의 말들은 당근과 채찍을 넘나들며 내게 다가왔다. 안정된 애착은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양육자는 나를 사랑해줄 것이라는 신뢰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부 사랑은 늘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내가 거짓말을 하거나 약속을 어긴다면?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한다면? 그 때 나는 혼자가 될까?'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착하지 않아도, 그냥 아무나 되어도 나는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울컥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파트너를 오래 만나면서도 나는 가끔 확인하려 한다.


"내가 살이 엄청 쪄도 나를 사랑할 거야?"

"나중에 내가 엄청 아파도 나를 사랑할 거야?"

"내가 돈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도 나를 사랑할 거야?"


"나는 네가 너라서 사랑하는 거야."


이 또한 누군가에게 수용받음으로써 내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존감이 만들어지는데에 타인에 의한 수용경험이 중요한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어렵지만 이해하려 노력한다. 내가 아무나 되어도,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이유로 나를 사랑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또,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언제든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아무나 되어야지. 나는 나대로 나의 삶을 살아가야지. 나는 나라서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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