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을 써서 네 시간에 활용하지 마!
"그 사람은 왜 항상 자신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우리를 만나는 걸까요? 우리 시간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까요?"
자신의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나를 만나는 사람이 있다. 마치 내 시간을 훔쳐가서 자신의 24시간에 이어 붙이는 듯하다. 이후 '시간 도둑'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의 시간 도둑이 있다. 1) 자신을 과신하는 자기애형, 2) 점심, 디저트, 저녁 시간 각각 약속을 잡는 홍길동형, 3) 연락 없이 약속시간에 늦어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는 잠수부형.
자기애형 시간 도둑을 처음 만난 날, 나는 그를 7시간 동안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12시였으니,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은 7시였던 셈이다. 처음에는 조금씩 그의 선약 일정이 늦어졌다(7시간을 기다리게 될지는 몰랐다). 그래서 2시간 정도는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다. 사실 두 시간을 기다리려 한 것은 아니었고, '지금까지 기다린 게 아까우니 조금 더 서있어 볼까'하던 것이 모여 두 시간이 되었다. 두 시간이 되니 문자가 오더라.
'미안한데 급한 일이 생겨서, 5시에 다시 볼 수 있을까?'
어쩌겠는가. 나는 그에게 아쉬울 것이 많은 입장이었다.
'기다리라면 기다려야지 뭐.'
나는 카페에 가서 그를 3시간 동안 추가로 기다리고는 5시에 다시 약속 장소로 갔다. 그는 또 다른 선약을 소화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선약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과연 나는 오늘 그에게 몇 순위 약속이었을까? 한 사람당 1시간씩 만났다고 쳐도 어림잡아 7순위이다.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려 7시가 되어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늘 30분 단위로 일정을 잡는다. 하지만 30분 안에 그가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시에 나와 약속을 잡았다면, 12시 반에는 내 친구, 1시 반에는 또 다른 친구와 이미 일정이 잡혀있다. 30분 이내에 끝낼 수 있는 일정이 전혀 아닌데도 말이다. 내게 30분을 허락한 그 시간 동안에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는다. 전화를 받고, 이메일을 보낸다.
대게 이런 경우는 소위 '갑질'로써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시간이 비는 것은 싫고, 주말에는 다른 일정이 있고, 점심에는 밥도 먹어야 하니까. 그래서 하루에 몰아서 일을 처리한다. 분명 하루에 처리할 수 없는 일인 것은 알지만(정말 아는지는 모르겠다), 그 날 몰아서 하지 않으면 다른 날 내가 또 약속 장소에 나와야 하니까. 나는 그래서 자기애형 시간 도둑을 만나는 날이면, 그 날의 일정을 통째로 비워둔다. 혹시 모를 일에 내 일정이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정말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내 24시간을 그의 30분을 위해 남겨둔다.
홍길동형 시간 도둑은 양호한 편이지만, 그래도 시간을 훔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간 도둑을 만나러 점심 약속에 나갔다. 그는 3시간쯤 후에 전화를 받으러 나간다. 그리고 돌아온다.
"미안한데, 내가 3시에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나는 겨우 3시간, 그를 만나기 위해 1시간 동안 준비하고, 1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에 온 것이다. 더욱 심한 경우는 내가 그 3시의 약속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3시에 커피를 마시고 이른 저녁을 먹을 거라 생각하고 나갔는데 내가 그의 자투리 시간을 채워주러 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6시에 저녁 약속이 있는데, 시간이 뜨더라고."
물론 그들은 크게 잘못한 일은 없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시간은 없으니 하루에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9시간이라면, 3시간씩 할애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각각의 약속 상대가 추가로 쓰는 시간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자신이 외출한 김에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만큼, 멀리서 온 약속 상대도 외출한 김에 그 사람을 오래 만나고 싶을 수 있는데 말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시간 도둑이 되지 않으려면, 미리 양해를 구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 날 다른 친구도 만나기로 해서 시간이 조금밖에 안 날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니는 홍길동을 잠깐이라도 보기 위해 먼 길을 나올지, 피곤하니 집에서 쉴지 약속 상대에게도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마지막은 정말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그리고 가장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잠수부형이다. 정말 많은 경우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특히 단체 활동을 할 때이다.
얼마 전 단체 활동의 일환으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나는 그 날 실무 담당자였고, 13명의 영화 티켓을 예매했다. 아침 조조영화를 보기로 했기 때문에, 일찍 나가서 선착순으로 표를 배부할 준비를 했다. 요즘에는 종이 티켓이 한 장씩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영화관의 직원 분과도 이야기를 마쳤다.
영화 시간이 다가오고, 이제 8명이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나는 언제 올 지 모르는 5명을 기다리며, 영화관 앞에 서 있었다. 티켓 확인을 하는 직원도 영화가 시작하자 다른 업무 장소로 이동했다. 10여 분을 더 기다려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단체의 리더는 저녁 식사 자리부터 참석하기로 한 상황이었고, 영화를 보러 오지 않은 사람들은 리더가 참석하는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미안해요, 제가 늦잠을 자서.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영화가 끝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저녁에 오려고 연락 안 드렸어요."
단체 활동이니까, 나 하나 빠져도 티가 안 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무자의 입장에서 소위 '잠수 타는' 사람들을 기다린다는 것은 상당히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 또한 내 시간을 뺏는 일이다. 잠수부형 시간 도둑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내 시간을 뺏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시간 동안, 나는 현재 계획을 다시 재정비하고 수정하며 시간을 소모한다. 그들은 그렇게 티 나지 않는 방식으로 내 시간을 훔친다.
나는 이런 류의 시간 도둑을 너무 힘들어한다. 내가 너무 시간이 없으니 한꺼번에 처리하고 싶어서, 내 시간이 비는 게 싫어서, 나 하나쯤 없어도 티 안 날 것 같아서. 자신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로 그들은 시간 도둑이 된다. 시간 도둑이 범죄 행동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큰 결함이 있는 행동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들과 나는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살아간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에게 소중하다. 그들이 24시간을 알차게 사용하고 싶은 만큼, 나도 그렇다.
부디 내 시간을 훔쳐서 당신의 시간에 이어 쓰지 말기를! 아무리 그래도 25시간이 될 수는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