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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멀 IMEOL May 07. 2020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었으면.

스스로에 대한 비합리적인 기대를 내려놓는 연습. 

거의 8개월 만에 글을 쓰고자 자리에 앉았다. 꽤 긴 시간 동안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스스로가 인간임을 직면하는 것이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몇 개월 간의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는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려 한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스스로가 정한 표면적인 목적은 평소 하는 고민이나 성찰을 글로 담아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 깊고 솔직한 마음은 내가 취미로 시작한 일을 '잘하는 일'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욱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글을 꾸준히 쓰거나 숱한 퇴고 작업을 하지 않아도 타고나게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보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좋은 음색과 노래 실력을 타고난 사람도 발성과 호흡을 가다듬는 훈련을 꾸준히 하는 것처럼, 어떤 일이든 노력을 해야만 실력이 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마치 인간을 뛰어넘는 천재이기를 바라는, 아니 천재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꾸준히 글을 쓰기 어려웠던 이유는 '잘 쓰는 글'의 기준이 스스로에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에 의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부정적인 신호를 줄까봐, 그리고 그것이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직면하게 할까봐 두려웠다. 


사람은 누구나 이상적으로 바라고 되고자 하는 '자기(self)'가 있을 것이다. 이상적으로 바라는 면은 외모나 성취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성격이나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 또 스스로에 대한 이상과 기대가 충족되는 것은 내적인 만족에 의해서일 수도, 타인의 인정과 칭찬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합리적이지 않은 문장이다.) 누가 타인에게 미움받고 소외당하는 것을 태연히 즐길 수 있겠냐만은, 이렇게 스스로가 바라는 모습이 타인에 감정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상황을 야기한다. 타인의 마음은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인정할 것이라는 기대는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여기서의 '사랑'은 낭만적 관계에서의 사랑이라기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가 나에게 사랑을 주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표정, 말투, 행동 등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있을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상대의 모든 표현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해석 과정을 거친다. 


과연 어떤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싫어해서', '나를 좋아해서'를 대표할까요? 친구의 행동도 친구가 싫다기보다 그 친구의 행동이 싫었던 거잖아요. 지금은 상대의 어떤 행동 하나하나를 '거절'로 해석해서 받아들이고 있어요.

백세희 님의 에세이『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에서 인용한 일부 구절이다. 이와 같이 상대의 모든 행동이 나에 대한 마음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 행동을 해석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




인간의 애정, 친밀감에 대한 욕구와 대인 관계 이야기까지 꽤 먼 거리를 돌아왔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글을 써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공유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매번 긴장되는 일이다. 내 글을 읽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내 글을 어떻게 평가할지 늘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기를 바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글에 하트를 누르거나 댓글을 쓰는 일과 같은 모든 행동이 그들의 인정이나 칭찬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것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꾸준한 노력 없이 명문을 써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마주한다. 하물며 어떠한 종교라 해도 모든 사람이 믿지는 않으며,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의 글도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부끄럽게도 나는 인간이지만 늘 인간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고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조금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과 성찰의 과정이 또한 비합리적인 기대를 내려놓는 연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후의 글은 누군가의 평가나 행동에 휘둘리지 않고 쓰고 싶은 것을 쓴, 잘 쓰기보다 꾸준히 쓴 것이었으면 한다. 어차피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을 내려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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