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HAPPY TOGETHER>
세상을 몰랐었던
마냥 웃기만 했던
푸른 하늘 닮은 꿈을 가진
키 작은 꼬마가 어느새
담을 넘는다
- 박효신, <HAPPY TOGETHER>에서
위 가사의 1~5행 중 가장 시적인 것에 가까운 행은 어느 행인가? 1,2,4행을 고른 분은 없길 바란다. 3행을 고르시거나 고민하신 분은 아쉽지만 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내가 의도한 답은 5행 '담을 넘는다'이다.
시어는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을 지닌다. '돌려말하기'와 '(감각적으로)보여주기'이다. '담을 넘는다'가 정말로 담을 넘었다는 사실을 설명함이 아니라, '꼬마'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돌려말하기' 장치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3행은? 3행도 물론 '푸른 하늘 닮은'이란 시각적 표현을 통한 돌려 말하기를 하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적절했느냐다. '푸른 하늘 닮은 꿈을 가진'이라는 구가 [순수한]이라는 뜻인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서 "의미가 전달됐으니 충분한 것 아니냐?"라고 따질 수도 있겠다. 분명 글은 의미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그 목적이 "궁극적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시에서 뭐하러 비효율적이게 '돌려 말하기'를 하겠는가? 의미 전달에서 멈추면 그 말은 설명어에 그치고 시어가 되지 못한다.
다음 시를 보자.
달빛이 기운다
화요일
너를 그리는 바다
철없이 박았던 젊은 날의
못자국이 보인다.
- 박세현, <클레멘타인 1>
여기서 '못자국'은 젊은 날의 [과오]를 뜻함을 분명히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못자국'은 그것을 나타내기에 적절했는가? 물론이다! 본인 집에 혹시나 잘 못 박은 못자국이 있으면 들여다보아라, 얼마나 눈에 거슬리는 [실수]인가! 다시 '푸른 하늘 닮은 꿈을 가진'을 읽어보아라. 얼마나 공허하고 구멍 뚫린 말인지.
1행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이 행은 삭제되어야 마땅한 행이다. 이 행의 의미는 이미 2행 '마냥 웃기만 했던'에 들어있기 때문에 언어가 낭비된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절한 돌려 말하기가 이루어지지 않아 의미가 굉장히 추상적이다.
다음 가사를 보자.
이 지구 반대편에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던 작고 검은 나는
난생처음 보는 철로 된 새를 타고
회색 빛 숲 한복판에 떨어졌네
- 더 리딩클럽, <세상에서 가장 큰 피그미>에서
<HAPPY TOGETHER>의 '꼬마'와 <세상에서 가장 큰 피그미>의 '나' 중 누가 더 잘 그려지는가? "좋은 시는 무엇인가?"를 생각할 땐 꼭 '담을 넘는다'를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