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사랑했지만>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대 음성 빗 속으로 사라져버려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 김광석, <사랑했지만>
<사랑했지만>의 가사는 분명 사랑하는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노래는 장조에도 모자라 꽤나 밝은 멜로디로 불러지고 있다. 가사를 뚝 떼어 놓고 약간 빠른 템포로 불러보라. 동요 가사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통통 튀는 멜로디다. <사랑했지만>의 가사를 텍스트로 읽었을 때의 느낌과는 상당히 상반된다. <사랑했지만>은 이러한 아이러니에서 출발한다.
한 가지만 질문해보겠다 비가 먼지 사이로 내리는 모습이 과연 아름다운 이미지인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어울리는가? 내 생각은 딱히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왜 '먼지'인가? 주목해야 할 문제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시는 서로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이어령, 『언어로 세운 집』)'는 것이다. 단어 하나하나의 숨은 공간과 시간을 보아야 한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 건 '어제'였고, 그 비는 '먼지 사이로' 내렸다. 그렇다면 '오늘'은 어떤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는 없는, 그러한 시간과 공간일 것이다. 이렇게 '어제'와는 다른 시간과 공간인 '오늘'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다름 아닌 '먼지'다.
'그대 음성'이 '빗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의 '빗속'은 틀림없이 '어제'의 빗속이고, 그렇다면 '오늘'에 '그대 음성'은 없다. '어제'와 '오늘'에 단절의 의미가 더해지는 구절이다. '어제'에 '그대'는 비록 '은은'하지만 있었고, '오늘'에는 사라지고 없다. 마치 '먼지'처럼.
문장을 읽을 때에는 시제에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왜 '눈물이 흐르네 그리움으로/가슴이 저리네 외로움으로'와 같은 현재형이 아니라 미래형으로 적고 있을까. 화자에게 있어 당장 슬픈 것은 오늘이고 지금인데 말이다.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그대를 사랑했지만'에서 '어제'와 '오늘'이 단절된 이유가 드러난다. 화자는 '그대'와 사별했다. '지친 그대'와 그의 '은은'한 '음성'을 통해서 '그대'가 '어제'까지 병들고 약했음이 어렴풋이 헤아려진다. 그리고 '그대'는 '어제'와 '오늘' 사이에 생을 그쳤다.
보통 비가 그치는 것은 화창하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랑했지만>의 오늘은 오히려 비가 그쳤기 때문에, 먼지가 씻겨 내려갔기 때문에 더 슬프다. 화자는 결코 '오늘'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를 통해서 오히려 '오늘'을 통렬히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