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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 사람 May 05. 2016

가사로 보는 시에 대한 이해 #003

이문세, <소녀>

MBC 2015 'DMZ 평화콘서트'에서 부른 이문세의 <소녀>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 돼요

그리움 두고 머나먼 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올 순 없어요

노을 진 창가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면

찾고 싶은 옛 생각들 하늘에 그려요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

그대 외로워 울지만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 이문세, <소녀>


#1

     1연의 '떠나면 안 돼요'에서 '그대'가 화자를 떠날 것을 암시한다. 한편으로는 '그대'가 화자를 떠나기 전, 또는 적어도 떠나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화자는 절박함을 호소한다. 화자의 절박함을 알 수 있는 단어는 바로 '무지개'. 단어 '무지개'를 보면 저절로 떠올라야 하는 단어가 바로 '비'인데 '비'는 침울한 상황과 정서의 오랜 상징물이다. 그렇다면 '무지개'는 그 뒤에 찾아오는 낙일 것이다. 화자는 '그대'의 '무지개'가 곧 자신의 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떠나지 말 것을 피력하고 있다.


#2

     이 가사의 가장 큰 의문점은 겉으로 보기에 각 연들이 내용적으로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연에서 갑자기 창가에 홀로 있는 화자를 묘사하게 된다. 시는 생략이 짙다. 이에 독자들은 생략된 부분을 (자기만의 해석으로) 스스로 채울 줄 알아야 한다. 힌트는 주어져 있다. '노을', '구름', '옛 생각' 모두 공통적으로 사라지고, 소멸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노을은 낮이 끝나가는 시간적 공간과 동시에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시각적 풍경을 보여준다. 구름이 '떠오는' 구름이 아니라 '떠가는' 구름인 것으로 보아 해와 같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느낌을 준다. 무엇이 사라지고 있을까? '찾고 싶은 옛생각'임에 틀림없고 그것은 1연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1연과 2연의 연결고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3

     사실 2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자의 처지다. 화자가 있는 공간은 다름 아닌 창가. 창가만큼이나 지금 화자의 심정과 닮은 공간이 있을까? 본인이 창가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무엇을 하겠는가? 그저 창밖을 바라볼 뿐일 것이다. 누가 오더라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공간이 바로 창가다. 화자는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옛 생각을 바라볼 뿐이다.


#4

     3연에서 '그대'가 다시 등장하지만 여기의 '그대'는 1연의 '그대'보다 화자에게서 멀어져 있다. 2연을 통해 '그대'가 이미 화자를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3연에서 눈치채야 할 중요 포인트는 화자의 태도가 1연과 정반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1연에서는 '그대'에게 자기 곁에 머물라고 한 반면에, 3연에서는 자기가 '그대' 곁에 머물겠다고 했다. 1연의 화자가 소극적이었다고 한다면 3연의 화자는 능동적이고 의지적이다. 이 변화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1연과 3연 사이에 2연이라는 시간적 경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시의 구조는 쉽게 말하자면 사건(1연) -> 후회(2연) -> 각성(3연) 순서다.


#5

     이 가사의 또 한 가지 중요 체크는 '머무르다'라는 단어다. '머무르다'라는 단어 속에는 짧지만 '살다'의 의미도 포함된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잠시 동안 그의 속에서 산다는 것이라는 창작자의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화자는 '그대'가 떠난 뒤에도 한동안 '그대'에게 머물렀다. 한동안이라는 시간이 아니라면 '옛'이라는 단어를 쓰지도 않았을 테니까.


#6

     그렇다면 노래 제목인 <소녀>는 과연 화자, '그대' 둘 중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요? 성숙해가는 한 소녀를 그린 걸까요? 소녀를 사랑한 한 소년의 성숙을 그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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