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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 사람 May 14. 2016

이소라, <바람이 분다>

가사로 보는 시에 대한 이해 #007

KBS2 '음악창고' 2010년 6월 16일 방송 _ 이소라, <바람이 분다> 라이브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향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 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 이소라, <바람이 분다> 전문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는 전문에 걸쳐서 수평의 이미지와 수직의 이미지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를테면 '바람이 분다' 또는 '서러운 마음에 ~ 불어온다'는 바람이 부는 모습 즉 수평의 이미지이고, '머리를 자르고', '눈물을 쏟는다'는 떨어짐, 낙하를 형상화 시키며 수직의 이미지를 보인다. 이러한 수직과 수평의 대조가 이 작품 전체의 구조를 이룬다.


    수평과 수직의 대조는 작품의 전반적인 얘기이고 이 소절만이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미지는 상실이다. '텅 빈 풍경'의 비어 있는 공간과 '머리를 자르고'에서 잘려진 머리카락, '돌아오는 길에'에서의 회귀의 느낌이 '서러운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어두운 거리'는 수평을,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는 수직을.


    시를 읽을 때는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야 한다. 왜 '무리를 지으며'라고 했을까? '무리'라는 단어는 짐승의 떼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약간 복잡스럽고 혼잡하다. 때로는 폭력적이어 보이기도 하다. 화자는 '서럽다'고 했다. 서러운 감정이 우리에게 폭력이 아니면 뭘까.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서러운 감정에는 빈틈이 없어 도망칠 곳이 없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화자는 '내게서 먼 것 같'다고 부정한다. 심지어는 '이미 그친 것 같'다고 한다. '내게서 먼 것 같아'에서 충돌된 화자의 의지는 '이미 그친 것 같아'에서 충돌을 넘어서 초월의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 이는 후렴구로 넘어가는 부분에 아주 걸맞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는 부동(不動) 즉 수직, '시간은 흐르고'는 유동(流動) 즉 수평.



바람이 분다
시린 향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 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왜 하필 '여름'인가? 여름은 보통 '젊음의 계절'이라고 부른다. 겨울이 꽁꽁 얼어 붙는 부동(不動)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파릇파릇하고 활기가 넘친다. 화자는 그런 '여름'의 '끝', 즉 마지막에서 '너'라는 존재의 '뒷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여름'은 화자와 '너'가 한창인 때, 그러니까 '여름 끝'은 화자와 '너' 사이가 시들해지는 때이다.

    '차가웠던 것 같아'는 '여름'과 대조를 이루며, '다 알 것 같아'와 한 번 더 대조를 이룬다. 화자는 '차가웠다'나 '차가웠어'가 아니라 '차가웠던 것 같아'라고 추측의 문장을 썼는데 이는 '여름 끝'의 당시의 화자의 처지를 나타낸다. 과거의 화자는 '너'라는 존재의 상태에 대해 무지했음을 보여준다. '다 알 것 같아'에서 화자는 비로서 현재 깨닫고 있고 또 한번 초월을 겪는다.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 그당시 무지했던 화자의 모습이 '지금'과 또 한 번 대조를 이룬다. 그리하여 비로소 <바람이 분다>의 명구절,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가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천금'이 '추억'을 단단히 묶게 되면서 부동(不動)의 이미지가 확대되어 움직이는 '바람'과 대비를 이룸과 동시에, '눈물'에 더 무게를 싣게 된다. 수직과 수평이 극명히 교차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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