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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말가 Sep 18. 2020

[#502의 라디오브런치]  - 층간소음 탈출기(1)

- 옴니버스 소설 -


               [#502의 라디오브런치]는 글로 읽는 개인 라디오 방송을 콘셉트로 한 옴니버스 소설입니다.


 안녕하세요, [#502의 라디오브런치] 이야기 길잡이 이오영입니다.

모두 건강하시죠? 저도 육체적으로는 건강합니다, 정신적으로는 건강한 편은 아닙니다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각자 저마다 다른 무게의 힘듦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이제껏 살면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때가 몇 번 있었는데요, 그 원인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층간소음이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오늘은 절대 끝나지 않는 공동주택의 층간소음, 그 탈출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20년 동안 이사를 딱 두 번했는데  두 번 다 이웃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지요.

 신혼집은 다가구주택에서 시작했어요. 3층짜리 건물에 다섯 집이 살았어요. 저는 맨 위층에 살아서 그때까지는 그그그 그 무~서운 층간소음에 시달리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옆간소음이 있었어요. 이사 와서 며칠 되지 않아서 옆집 아주머니가 찾아와 음식을 나눠주시며 친하게 지내자고 하시더라고요. 가끔 음식을 주시면 저도 보답하고 그랬죠. 근데 그게 너무 빈번해지니까 슬슬 번거로운 거예요. 보답할 건 없는데 빈 접시로 되돌려 보낼 수도 없고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음식 나눔으로 저와 가까워졌다고 여겼는지 옆집 아주머니는 출근하고 나서 (자택 근무하는) 저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집 가스밸브를 잠가달라거나 애들이 컴퓨터가 안된다고 하니 봐달라는 부탁을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심지어는 외출해 있던  저에게 중앙현관문이 잠겨서 애들이 못 들어가고 있으니 빨리 가서 열어주라는 황당한 부탁을 하더라고요. 어떡합니까, 애들이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는데. 일 보다가 집에 돌아왔었다니까요. 이후로도 아이들은 좁은 복도에서 막 뛰어놀고, 우리 집 벨 누르고 바로 옆에 딱 붙어있는 자기 집으로 도망가고...

 와......

옆집 살면서 얼굴 붉히고 살 수 없어서 인내하고 부탁을 들어주다가 슬슬 선을 긋기 시작했죠. 한 번은 담아져 온 음식 나눔에 빈 접시로 되돌려드렸더니 점점 오가는 게 없어지고 부탁을 거절하자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고 옆집은 몇 년 뒤에 불의의 사고가 생겨 이사를 갔습니다.  물론 우리 집도 시끄러웠겠죠. 신혼이기도 하고 소리 지르며 싸움도 많이 했으니까. 옆집도 스트레스받은 적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다음에  옆집으로 이사 온 새로운 사람들은 어우.... 이게 뭔가요, 목소리가 어찌나 큰 지 무슨 얘기하는지 정말 다 들리고, 복도에는 물건을 잔뜩 내놓고 쌓아두고, 문을 쿠왕! 쿠왕! 닫고 다니고..... 악의는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매너도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저의 스티로폼 박스 텃밭 상추도 마음대로 따다 드시고.... 그렇게 그렇게 스트레스받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어서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항의해보지 않았냐고요? 네. 항의를 하거나 주의를 부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어느 날 제가 만취가 돼서 옆집 문을 발로 차며 "좀 조용히 좀 해라, 좀!" 이랬다고 제 남편이 그다음 날 알려주더군요. 얼굴을 들 수 없었지만 마음 한편은 왜 시원해지는 건지.... 요. 하하하. 그때 그 옆집에 사람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어찌어찌 무마가 된 건지 남편의 거짓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저의 신혼집에서, 그 스트레스에서 7년 만에 겨우 탈출했습니다. 이사했습니다.


 이사한 집은 10년 된 아파트였어요. 전망도 좋고 복도식 아파트도 아니고 여기서 뼈를 묻자-며 행복을 만끽했죠. 그 뼈를 묻을 행복은 딱 두 달 만에 끝났어요.

 위층 사람들은 4인 가족이었는데 4인 모두 뒤꿈치 걷기의 달인들이었어요. 두 달 동안은 집을 비웠던 걸까요? 왜 두 달이 지난 뒤 걷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이동 동선이 그려질 만큼 소리는 선명했습니다. 변기 뚜껑 쾅 닫는 소리, 방문 꽝 닫는 소리, 들통 씻는 소리......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새벽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새벽에 일을 나가는지 새벽부터 일어나서 한바탕 요란스럽게 준비하고 4시쯤이면 현관 소리가 들리고는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후에 다른 소음 유발자들이 일어나서 제 할 일들을 했어요.

 제일 괴로웠던 게 뭔지 아세요? 물론 미친 쿵쿵거리는 소리입니다. 위에서 쿵쿵거리면 제 뇌는 벙벙 거리고 심장은 벌렁거리고 식은땀이 났어요. 그와 함께 미치게 싫었던 건 창문에서 이불을 터는 거였어요. 갑자기 거실 창문밖에 이불이 펄럭하면 정말 기절초풍합니다. 사람이 떨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거예요. 이틀에 한 번은 이불을 터는데......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딱 한 번 이불을 터는 순간 튀어 올라갔습니다. 벨을 누르고 "누구세요?" 하길래  "아래층입니다." 하고 문이 열리길 기다렸죠. 그 집 딸이 문을 열어주더군요. 문을 열고 냅다 쿵쿵 뛰어가며 소파로 날아 올라갔습니다. 아주머니는 거실에서 이불을 들고 열린 현관문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죄송하지만 이불을 터실 때 제가 너무 놀라거든요. 짧게 잡고 터시거나 다른 방에서 털어주시면 안 될까요?"


쿵쿵거리는 층간소음은 얘기도 않고 일단 이불 얘기만 했죠. 그랬더니 아주머니는,


"이불 안 털었어요."


뭐죠? 저 반응은? 들고 있는 건 그럼 호랑이 털가죽인가요?


"지금 이불 터시길래 제가 바로 올라온 거거든요."

"알았어요."


뭘, 도대체 뭘 알았다는 걸까요?

어법에 맞지 않는 대화를 마치고 그렇게 내려왔어요. 그런데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보란 듯이 이불을 터시더군요, 더욱 심해진 층간소음과 함께.

 며칠 뒤에 위층 사람들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돼서 인사를 했더니, 어이없게도 외면하는 거 있죠? 위층이 인사하면 내가 외면해야 하는 뭐 그런 상황인 거 아닌가요? 물론 그것도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요.

"알았어요.""네가 감히 따져? 그래, 두고 보자."였나 봐요............

위층 아저씨는 반장이었는데 뭔가 서류에 사인받으러 가끔 우리 집에 들르셨어요. 거의 사무적으로 대해드렸죠. 아저씨는 나, 반장이야~하는 예의 미소를 지었고요. 그런데 그렇게 사인받아가지고 올라가면 문 꽝! 쿵쿵 쿵쿵!!!! 화장실 꽝! 휴우우우우......

 어느 날은 텔레비전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길래 저는 밖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선거 홍보차에서 나는 소리 같은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런데 윗집이었어요. 층마다 현관에 몰래 귀를 대며 확인했거든요. 그러면서 공을 벽에 던져서 다시 받는 것 같은 규칙적인 콩콩 소리가 들렸어요. 전 아파트 한 바퀴를 돌고 집에 들어와야 했어요. 그러고 나서 그 소리가 멈춰있으면 좋은데...... 그러지 않았어요.

 저는 어떻게든 견뎌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일찍 귀가하는 날은 더 안절부절못하겠는 거예요. 남편이 항의할까 봐 그러나다 싸움 날까 봐 그러다가 사고 날까 봐서요. 그러면서 온갖 망상이 저를 더 괴롭혔던 것 같아요.

항의 한 번 한 것 때문에 일부러 더 소리를 내고 더 쿵쿵거리고 그러는 것 같았어요. 이 사람들 썩소 날리며 바닥에 절구를 찧는 것 같았어요. 인터폰으로 항의하면 보복을 하러 내려올 것 같았어요. 하필 그 당시 뉴스에 층간소음으로 인한 위아래 층간 사건 사고가 엄청 많았고, 보도도 잦았고, 해결책이나 민원처리에 관한 뉴스가 많았어요. 심지어는 살인사건까지... 빈번하게 났었어요. 그러니까 더 불안해지는 거예요. 결국 저는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했어요. 근데 윗집의 쿵쿵거림은 신경안정제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이사를 결심하게 된 건 앞집이 이사 오게 되면서였어요. 그 집에 엄청,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활동적인 남자애가 있는데 이틀에 한 번 그 집 아랫집이 올라와서 항의하더군요.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하더니 그다음부터는 양보가 없더라고요.

가끔 앞집 사람들을 현관문 앞에서 만나면,


"저희 집이 너무 시끄럽죠?"


먼저 물어오시더라고요. 근데 앞집이 시끄러운 건 저희 집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


"저희는 괜찮아요."


그랬는데 뭔가 일이 꼬였어요. 아래층에서 우리 집에 항의 인터폰을 해왔답니다. 너무 뛰는 것 같고, 혹시 새벽에 베란다에서 세탁기 돌리냐고. 아니라고 했죠. 아래층은 제가 발뺌하는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이틀 뒤, 그리고 또 이틀 뒤 인터폰을 주셨습니다. 급기야 제가 집에 없는 날, 아래층 아주머니는 지인과 함께 저희 집에 와서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며 문 열라고 했답니다. 아마 저와 한 판 뜨려고 작심하고 올라오셨나 봐요. 사람 없는 집에 문을 하도 두드리자 저희 앞집이 문을 열고 말했대요.


"그 집은 사람이 안 사는 것처럼 사시는 분들이시던데..."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고 앞집 분이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저의 남편에게 전해줬답니다.

저는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어요. 저의 위층 여자처럼 쌩까고 있을 수는 없었답니다. 오해받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손 편지를 써서 아래층 우편함에 꽂아놨어요.


- 저희 집은 러닝머신도 없고, 아이도 없고, 식기세척기도 없고, 청소기는 일주일에 두 번 평일 12시쯤 돌리고 있고, 세탁기는 세탁실에 있으며, 거실에는 두꺼운 카펫 깔려있다. 올라와보셔도 좋다. 남편은 11시쯤 들어와서 7시쯤 나가는데 가끔 새벽에 들어오는 날 씻을 때는 더 주의하겠다. 그리고 나도 베란다에서 윙윙 기계소리 듣고 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원하시면 언제든 이야기 나누고 싶다. -


이런 내용으로 연필로 고쳐가며 쓴 뒤 다시 볼펜으로 써서 꽂아놨습니다. 다음날 그 편지는 우편함에서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저는 이사 갈 집을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갈 때까지는 1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층간 소음 상황은 더욱 나빠졌어요. 아래층에서는 또 다른 층간 소음으로 말싸움이 크게 났고 그 이후로 망치질 소리가 온 아파트를 울려댔습니다. 아래층과 그 아래층의 전쟁이 시작됐어요. 뛰면 망치질하고 망치질하면 또 뛰고 두드리고 꽝꽝꽝꽝! 쾅쾅쾅 쾅!

그냥 저는 부처가 되자 했어요. 책을 필사하고 이어폰을 꽂고 생활하며 약을 먹어야만 잠을 잘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사 갈 때까지 항의하지 말아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 또 부탁을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런이런~ 벌써 끝날 시간이 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의 뒷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헤~ 궁금하시려나~

내일은 오늘보다 5%만 더 나은 날이 되길 바라며, 지금까지 [#502의 라디오브런치] 이야기 길잡이 이오영이었습니다. 금방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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