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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말가 Sep 23. 2020

[#502의 라디오브런치]  - 층간소음 탈출기(2)

- 옴니버스 소설 -


       [#502의 라디오브런치]는 글로 읽는 개인 라디오 방송을 콘셉트로 한 옴니버스 소설입니다.



[#502의 라디오브런치] 이야기 길잡이 이오영입니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부리나케 왔습니다. 잠깐 숨 돌리고요~ 휴우~~~^^

오늘은 층간소음 탈출기 그 뒷이야기를 이어갈게요. 혹시 궁금하셨던 분 계셨을까요? 하하하


 이사 갈 집을 계약하고 1년을 기다려야 하고 다른 집의 층간소음 분쟁으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말에 집에 있다가 층간 소음에 남편까지 스트레스받을까 걱정되어 일요일은 거의 밖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날은 김유정 역을 다녀왔어요. 김유정역 근처 식당에서 숯불닭갈비를 먹고 나오는데 제 목에 있어야 할 열쇠 모양의 목걸이가 없는 거예요. 한참을 찾아도 없어서 낙심한 채 집에 돌아왔어요. 그 당시 저는 제게 닥친 문제의 열쇠를 얻고 싶어서 열쇠 모양으로 된 목걸이를 모으고 하나씩 목에 걸고 다녔어요. 대략 열댓 개 정도 모았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어버린 거예요. 아파트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2층에서 여자분 한 명이 엘리베이터에 타셨어요. 그리고 10층을 누르셨죠. 우리는 11층이 눌려있는 상태이고요.


10층...


 3층, 4층, 5층...

그분이 불쑥 말을 걸어왔어요.


"1101호 분이시죠, 저한테 편지 주셨던....?"

"아, 네....  안녕하세요."

"저기-- 보내신 편지 읽었어요. 제가 그때 잘못 알았더라고요. 다른 집이었는데 오해를 해서...

편지 읽고 바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이제야 말씀을 드리네요."


편지를 우편함에 넣은 지 7개월 만이었습니다. 그분은 내 편지를 읽었어요. 그리고 오해를 풀려고 했었대요.


아...


저는요 그때 너무 감격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오해를 풀게 돼서 다행이라고 대답했어요.

엘리베이터가 10층에 도착하자 그분이 인사하고 내리셨어요. 저는 문이 닫히는 찰나에 다시 문을 열고,


"감사합니다. 얘기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거의 울먹거리면서 말한 것 같았어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남편과 나는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냥 모른 척 해도 내가 따지거나 하지 않았을 텐데, 아래층 여자분은 오해였다고 말을 전하기 전에 얼마나 망설였을까, 우린 둘이고 아래층 여자분은 혼자라서 조금 쫄렸을지도 모르는데, 오해였다고 말해주다니...

전 너무 감격했어요. 그때 엘리베이터가 다시 열렸을 때 저 사실은 그분에게 가서 덥석 끌어안고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그리고 조금만 더 일찍 얘기해 주지-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덩달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아래층 분과는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게 됐습니다. 전 정중히 인사했고 그분도 인사를 받아주셨죠. 따로 교류는 없었어요. 그냥 인사만 했어요. 뭔가 편한 마음으로 하는 인사였죠.

 그리고 4개월 뒤 저는 이사했습니다. 이사할 때 아래층에 인사는 하지 않았어요. 뭐 그냥 떠나는 마당에 어색할 것 같아서 인사하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평일이어서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요. 이제와 생각하니 인사하는 게 좋았으려나 싶은 생각도 살포시 드네요. 그렇게 6년 만에 층간소음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어요. 지은 지 2년 된 신축 아파트여서 층간소음이 덜 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계약을 했던 거죠. 이사 와서 잘 보이고 싶어서 위층, 위층 옆집, 우리 옆집, 아래층, 아래층 옆집까지 무려 시루떡도 돌렸습니다. 아래층에 가니 아래 아래층의 어르신이 소음이 나면 인터폰이나 방문을 자주 하신다는 정보를 줬어요. 엄청 쫄았습니다. 하지만! 네~ 다행히 층간소음이 없었어요. 윗집에 아이들은 없는 것 같았어요. 퉁퉁하신 분이 12시에 퇴근해서 씻고 다시 조용해지는 30분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었어요. 무사히 1년 6개월 정도를 층간소음 없이 살았습니다. 위층은 이사를 갔고 다른 집이 이사를 왔죠.


아... 지옥의 문이 열렸습니다. 

 아이는 둘 정도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사 오기 전 일주일 동안의 인테리어 공사 소음은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는데 뛰는 소리는 정말 제 심장을 목 조르듯이 졸랐어요. 망치로 내 머리를 치는 것 같았어요.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궁궁궁궁 궁궁궁궁 쿵!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뛰었어요. 어느 날은 10시가 넘도록 계속 뛰는데 저희 집으로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왔어요. 아래층에서 밤이 늦었는데 너무 뛴다고 연락이 왔다며. 저희 집이 아니라 저희 위층인 것 같습니다- 했죠. 위층이 인터폰을 받았는지 조용해졌어요.  에휴...  

 위층은 특히 아침에 난리가 아니었어요. 매일 아침 6시 반부터 이사를 하는 것 같은 소음을 냈습니다. 출근 준비와 아이들 유치원 가는 준비 소리가 정말 엄청났어요. 아이들이 현관 밖으로 나와서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서 비명을 소리소리 지르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버린 9시가 되면 조용해지다 못해 고요해집니다. 그러다가 오후 2시가 되고 아이들이 집에 오면 다시 지옥문이 열립니다.  어느 날 아침은 진짜 거실 등이 흔들릴 정도로 소음이 너무 심해서 남편이 경비실에 항의를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조용해지더군요. 한 2분 정도. 그다음부터는 절대 인터폰 하지 않았습니다.


안되나 보다.... 또 이사 가야 하나 보다…


 위층은 삼일에 한 번은 손님이 와서 놀다 갔습니다. 그러면 전 불지옥에 빠지는 거였어요. 아이들이 4명이나 6명으로 늘어서 뛰어댔어요. 아.... 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면 전 밖으로 돌았습니다. 아파트를 3시간 정도 돌다 들어왔어요.

 그나마 두 가지 다행인 것은 있었어요. 아이들이 9시 이후로는 뛰지 않게 됐다는 것입니다. 제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새벽에 조용해? 그럼 인터폰 하지 마. 낮엔 뛰어야지 별 수 있니?"

아마 제가 직장을 다녔다면 우리 집이 층간소음이 없는 집인 줄 알았을 거예요. 에휴.... 전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어찌 괜찮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다행인 또 한 가지는, 다행이라기보다는 층간 소음으로 인해 생긴 좋은 점이랄까요?  

살이 빠졌습니다. 

아이들이 뛰고 제가 빨래처럼 쥐어짜지면 하루에 0.5kg씩 빠졌습니다. 어느 날은 2kg도 빠졌어요. (라면 먹으면 금방 복구됐지만...) 밥도 잘 못 먹고 토하고 잠도 설치다 보니 그랬나 봐요. 그래서 거의 5kg 정도가 그냥 빠졌죠. 햐~ 층간소음은 다이어트의 지름길입니다.


 그렇게 저는 시들시들 피가 마르면서 정서도 메말라 가고 있었어요. 겨울이 되었습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어요. 저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이었죠. 전 그저 뇌를 비우고 있었어요. 느닷없이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전 텔레비전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대낮에 우리 집에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택배 올 것도 없었고요.


"누구세요?"


인터폰 화면에는 젊은 여자가 서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위층이에요."


위층? 위층이 왜?


떨떠름한 기분으로 문을 열었어요. 문을 열자 2.5살 정도 된 꼬맹이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절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젊은 여자 옆에는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고요.  완전 깜짝 놀랐죠. 젊은 여자 혼자인 줄 알았는데 화면에는 잡히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던 거예요.


흠... 이 녀석들이구나!


"인사가 너무 늦었죠? 이사 와서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찾아뵙네요."

"아.... 네...."

"그동안 너무 시끄러우셨죠? 죄송해요."

"아.... 네... 조금..... 아침엔 조금....."

"죄송해요. 그런데 인터폰도 안 하시고 감사해요."


라며 김 한 상자를 내미는 거예요. 아이들은 둘 다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뭐야... 귀엽네...


"산이, 들이, 아줌마한테 인사해야지."


애들은 건방스하면서 귀엽게 고개만 까닥했어요.


"안녕~!"


저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주었어요.


"이거 변변치 않지만 받아주세요. 그리고 시끄러울 땐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아, 아니요. 이건 받지 않겠습니다. (그냥 제발 뛰지만 말아주세요) 이렇게 인사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거 받으면 제가 연락을 못 드리는데요...."

"호호호홍~ 아니에요, 받아주세요. 그리고 불편하실 때는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저... 정말 연락할 겁니다."

"호호호호홍~ 네 연락 주세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위층 젊은 엄마가 넉살이 좋았어요. 용기도 좋았죠. 혼자 와도 되는데 아이들을 노출시키다니. 암튼 놀라웠어요.

그러나 더 놀라운 건 제 마음이었어요.

왜죠? 왜, 마음을 짓누르던 돌무더기에서 큰 돌덩이 하나가 빠진 것 같은 거죠? 젊은 엄마가 인사를 와줘서? 똘망똘망 두 눈망울 때문에? 그랬어요. 정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아이들과 젊은 엄마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애들은 여전히 뛰었지만 강도가 덜한 느낌이었어요. 심장은 뛰었지만 머리를 망치로 내려찍는 느낌은 덜했어요.

한 달 정도를 김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여차하면 돌려줄 생각으로) 있다가 철부지 같은 남편이 김을 훅 빼먹는 바람에 저도 뭐... 먹었죠. 그리고 카스텔라를 준비하고 손 편지를 썼어요. 그리고 미치게 뛰기 시작할 때 인터폰 했죠.


 "아래층인데요, 잠시 1분만 올라가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위층 사람들을 간을 조금 쫄려 놓고 올라갔죠. 문이 열리자마자 젊은 엄마는 버선발로 나오며 말했어요.


"죄송해요, 애들이 너무 뛰었죠?"

"네. 하하하! 근데 오늘은 그래서 온 건 아니고 저기... 이거...."

"아니, 이게 뭐..... 어머~ 뭘 이런 걸-"

"아니에요. 정말 약소합니다. 가보겠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내려왔습니다. 애들이 뜁니다. 카스텔라가 마음에 들었을까요? 그냥 앉아서 먹으면 좋으련만...

위층은 가끔 음식을 전해주었고 저는 얇실하게 그보다 작은 걸 전달했습니다. 아시잖아요, 제가 음식 나눔에 약간의 저기(?)가 조금 있는 거요. 그렇게  저는 위층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어요. 소음으로 인한 고통이 7이라면 3은 망상 때문이라는 걸요. 위층 사람들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악인으로만 그리면 그 소리는 3배 4배로 크게 작용하는 것이라는 걸요. 호호홍하며 잘 웃는 젊은 엄마나 귀여운 두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 저렇게 뛰는 게 악의적인 게 아니라 즐거운 일이 있나 보다ㅡ라고 생각하게 되고 뛰는 소리의 크기는 정말 기적처럼 반으로 줄어듭니다. 좋은 마음과 이웃과의 인사가 층간소음의 데시벨을 조절할 수 있더라고요.

물론 가끔 심장과 뇌를 강타할 만큼 뛰기도 합니다. 하지만 9시 이후로는 무조건 평화스럽습니다. 오히려 이사를 가지 않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가 됐어요. 다른 집에 다시 적응하기.... 힘들잖아요.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고 위층분의 처세술로 감사하게도 층간소음에서 탈출했습니다.

 


 층간소음에서 탈출하고 나니 살이... 살이... 살들이 더덕더덕 붙어서 굴러다니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공동주택 사시는 우리 이웃 여러분, 위층 분도 아래층 분도 만나면 인사하세요.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편지 적어주세요. 쪽지 보내주세요. 개망나니 같은 이웃만 아니라면 서로 배려할 겁니다. 그렇게 믿고 싶어요. 안타깝게도 개망나니 같은 이웃도 꽤 됩니다만....

 층간소음으로 고통받지 마세요. 해결이 되지 않으면 도망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이웃 간에 버르장머리를 고쳐보겠다고, 매너를 가르쳐보겠다고 하다가 사고 납니다. 내 마음의 평화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이 마르네요. 차가운 모과차로 목을 축여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어수선하게 층간소음 탈출기를 쏟아냈는데, 어떠셨어요?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502의 라디오브런치] 이야기 길잡이 이오영, 이만 인사드릴게요. 내일도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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