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야기 길잡이 이오영입니다. 식사하셨어요? [502의 라디오브런치]와 함께 하시죠.
여러분, 혹시 기부해 보신 적 있으세요? 부끄럽게도 저는 50살이 되도록 기부를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답니다. 기부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집이 다른 사람을 도울 정도로 경제 사정이 넉넉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기억을 떠올려보니 우리 부모님은 어려운 사람을 종종 도와줬던 것 같네요. 밥도 주고 목욕도 씻겨주고 쌀도 놓고 오고.) 저는...
아, 어렸을 때 그런 건 했었어요.
초등학교 때 크리스마스 씰을 산 적 있어요. 씰을 사면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고 해서요. 그리고 불우이웃 돕기 성금 모금을 위해 폐품 모으기를 할 때는 신문이랑 우유팩이랑 진짜 열심히 모아서 학교에 냈었어요. 제일 많이 모은 반에는 배구공을 상품으로 주는데 그걸 받으려고.....(40년 전에는 이런 것도 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적십자 회비 몇 번내고(고지서가 나와서 의무인 줄 알고) 그마저도 30살 이후로는 (고지서가 나왔지만 의무가 아닌 걸 알고) 내지 않았어요.
30살 이후엔 크리스마스를 낀 연말에 데이트하러 나가서 구세군 자선냄비에 두어 번, 몇 천 원 넣은 것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성금들이 어디에 쓰이는지 투명하지 않은 것 같아서 성금을 내지 않았고, 기부금 횡령, 갈취에 대한 뉴스들을 접할 때마다 점점 더 기부에 대한 생각들이 멀어졌어요. 뭐 나름 기부하지 않는 합리적인(?) 핑곗거리를 만든 거죠. 그런 나쁜 뉴스들을 나만 접하는 것이 아닐 텐데 여전히 기부를 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정액제로 다달이 기부하시는 분, 연말에 꼭 나타나는 익명의 기부자, 꾸준히 기부하거나 거액을 기부하는 연예인, 폐지를 주워 팔아 모은 금보다 귀한 돈을 당신의 형편 나아지는 것에 쓰지 않고 대학에 기부하는 80살의 할머니에 대한 뉴스를 보면 존경스럽지만 솔직히 저 돈이 제대로 쓰일까 하는 의심부터 들었어요. 저는 기부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못난 사람입니다.
그랬던 제가 이번에 기부를 했습니다.
사실, 이번에도 기부는 아니고 기증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옷장 좀 비우려고 옷들 정리하면서 오래된 옷과 작아져(옷은 작아지지 않죠..."ㅡ..ㅡ") 입지 못할 옷들을 골라냈어요. 아파트 안에 있는 헌 옷 수거함에 넣으려니 쓰레기처럼 취급될 멀쩡한 옷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벼룩시장 같은 것이 있으면 팔아도 될 것 같아서 버리기를 머뭇하고 한쪽에 모셔(?) 뒀었어요.
그랬는데 마침 저희 동네에 '아름다운 가게'가 오픈을 한 거예요. 기부받아서 재 판매하는 상점인 '아름다운 가게'를 알고 있긴 했지만 동네 가까운데 매장이 없어서 아쉬웠었거든요. 차 타고 나가야 하는데 저는 그런 열정은 없었던지라....
기부하기 전에 오픈한 매장에 가봤는데 의외로 새 상품도 많고 명품도 있고 브랜드 제품도 많고 가격이 비싼 것도 꽤 있더군요. 그런 걸 보니까 제가 추려낸 옷이 너무 후줄한 것 같은 마음에 여우여우 생각하다가“해보자!”하고 들고 갔습니다. 명품도 아니고 새 제품도 아니지만 기부가 되면 좋고 퇴짜 맞으면 그냥 버리면 되지 뭐- 하는 마음도 슬쩍 넣어서요. 싹 빨아서 깨끗하게 해서! 보풀이 있거나 얼룩이 있거나 그런 제품들, 다시 팔 수 없는 제품들은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미니 점퍼 하나만 퇴짜 맞고 8벌 기부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얄팍한 계산 속이지만 소득공제 혜택을 받으려고 기부물품 인수증도 챙겼습니다. 1~2주 후에 가격을 책정해서 기부영수증을 문자로 안내받습니다. 나중에 안내받은 문자를 보니 이번에 기증한 물품은 9,200원으로 기부금 책정되었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기증 천사'가 되었습니다. 남편 이름으로 기증했거든요. 호홋!
기증을 하고 기부물품 인수증을 들여다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거기엔 기증한 사람을 '기증 천사'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뿌듯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듯도 했네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마음을 써서 기증을 한 게 아니고 버리기 아까워서 기왕이면-이라는 생각으로 기증을 한 까닭입니다. 제 경우엔 '기증자'는 맞는데 '기증 천사'까지는 아닌 거죠. 근데 또 묘해요. 또 하고 싶어 져요. 막 그냥 '기증 천사'가 되고 싶어 져요. 그러면 진짜 천사가 될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 같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집을 뒤져서 멀쩡한데쓰지 않는 것들을 찾아 골라냈습니다.
휴대폰 케이스, 언젠간 입겠지 싶었던 정장, 지우개, 색연필.. 등등 여러 개가 나왔어요. 그중에 기증이 되지 않는 물품들(오래된 전자제품, CD, 일회용품, 수제 용품 등등)은 제외하고 2주 뒤에 또 기증하러 갔습니다. 옷 5벌, 잡화 10점을 기증하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29,000원 기부영수증을 안내받았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히 처음에 느꼈던 마음과는 다르더군요. 쬐끔 더 뿌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중고마켓에 팔아도 될만한 것들이지만 이건 그래도 나름 좋은 일이잖아요. 좋았어요, 마음이. 다음엔 서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7년 이내 발행된 서적으로 새책도 있고 멀쩡한 것들이 몇 권 있거든요. 지화자!
이래 놓고도 아직 금전적인 기부는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 쓰임에 대한 의심으로 아직 제 마음이 열리지 않고 있어요. 그래도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할 겁니다. 네, 꼭 할 겁니다. 하고 나서 제일 먼저[502의 라디오브런치]에서 자랑하겠습니다.
기부하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전 재산 사회에 환원하시는 분, 평생 모은 돈 기부하시는 분, 배달하시면서 다달이 어린이 후원하시는 분, 해외 봉사 가시는 분, 재능 기부하시는 분, 동전 모아 파출소 앞에 놓고 가시는 분, 다른 사람에게 따듯한 온정의 마음을 베푸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어쩔 수없이 기부하는 분들까지도 존경하겠습니다. 저는 그러지도 못한 사람인 걸요.
[502의 라디오브런치]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마음 씀씀이가 가냘픈 이야기 길잡이 이오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