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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말가 Apr 01. 2021

맏이

혜택의 부록은 짐입니다.


 안녕하세요, 화창한 아침에 이야기 길잡이 이오영 인사드려요. 오늘은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는 아주 쾌청함으로 가득한 날입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아요. 정말 그래 주면 좋겠어요. 저도 쬐끔 받으면 좋겠습니-돴!


 여러분 혹시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예능 프로그램 본 적 있으세요?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인터뷰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에요. 지금은 유명인이나 이슈가 되는 사람을 초대해서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프로그램 초반엔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만나는 일반인을 즉흥적으로 섭외해서 인터뷰를 하는 로드쇼 방식이었어요. 이야기를 나눈 뒤 퀴즈를 내고 맞추면 바로 현금 100만 원을, 못 맞추면 자기 백(선물 뽑기 가방)의 상품을 줍니다. 그런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토크쇼였어요.


 사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1회와 2회까지는 봤었어요. 유재석이 하는 거니까 의리로 봤죠. 근데 2회까지 보고 더 이상 못 보겠더라고요. 유재석이 조세호 갈구는(?)것도 거슬리고 일반인과의 인터뷰를 하는데 두 진행자가 일반인의 이야기에 동화되지 못하고 겉돌고, 말 끊고, 쫓기는 듯한 진행과 편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보기를 포기했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우연히 유퀴즈 재방송을 보게 됐어요. 아기 상어 제작자 나오는 편이었는데 꽤 재미있더라고요. 흥행하려면 B로 시작되는 것이 필수라면서 ㅎㅎㅎ!!! 3B= 봉준호, BTS, BABY SHARK. HHH!!

그래서 그 이전 편을 찾아봤어요. 그것도 재미있어서, 그래 처음부터 정주행 해보자, 해서 1편부터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봤습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다시 봤어요. 푹 빠졌습니다. "난리 났네 난리 났어!"라는 성대모사는 대박이었고, 유재석이 오열하는 모습이나, 어린이, 청소년, 청년, 중년, 장년, 노년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굉장히 다채로웠습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사람 여행! 딱 그거였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컨텐츠였어요. 대신으로 제가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인상 깊은 에피소드들을 다 나열하기엔 저의 방송 시간이 모자랍니다.

 

 오늘은 유퀴즈 온 더 블럭 방송 프로그램을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앞에서 이미 꽤 했네요. 하하하) 그 방송을 보면서, 보고 나서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아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이 첨단의 시대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착한 맏이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맏이라서 학업을 포기하고 그 어린 나이에 밥벌이를 나서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했다는 몇몇 맏이 분들의 이야기를 봤어요. 자신은 맏이라서 학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이, 자신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보이는데도 동생은 대학 나와서 유학까지 가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 당시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당연한 것이라고 수줍은 듯 웃으며 말하는 모습들이 제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맏이로 그 고생을 하면서 양보 아닌 양보를 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은 넉넉하지 못한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노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는, 세상에 흔하지 않은 맏이가 아직도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습니다. 요즘은 자신에게 짐이 된다 싶으면 가족이든 누구든 나 몰라라 버리기 십상이잖아요. 돈 없는 부모나 형제는 걸리적거리는 존재일 뿐인 세상이 되었잖아요. (.... 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제가 굉장히 부정적이 돼버렸나 봐요.)

 '백발의 치매 노모를 모시고 사는 백발의 아들'과 같은 감동 스토리는'세상에 이런 일이'나 '인간극장'에서 종종 봤었지만 유퀴즈에서처럼 이런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제게 조금 다르게 와닿았습니다.


 맏이가 갖는 책임감은 어떤 걸까요?

동생이 자식 같은 마음이 드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걸까요?

맏이라는 유전자가 막중한 책임감을 갖게 하는 걸까요?

그 책임감이 무겁지 않을까요?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그래야 하는 상황에서 도망가거나 모른 척하고 싶지 않을까요?

가능하면 돌봐줘야 할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내 몫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여서 희생하는 걸까요? 가족이니까-라는 저주에 걸린 건 아닐까요?

뭘까요, 맏이는?


 전 막내라 맏이가 갖는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외면하고 도망치는 자식들의 마음은 이해하는 편이죠. 하지만 사회생활도 맏이처럼 했었고, 가정생활도 맏이처럼 하고 있습니다. (쳇! 힘들다니까요. 맏이인 듯 맏이 아닌 맏이 같은 내 인생~)


 제가 생각하는 첫아이는 말이죠, 부모에게는 처음 맞이하는 아이라서, '맏이'라기보다는 '첫 행복 맞이'라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태어났고 다음 아이가 태어나고 또 태어나도 첫째에 대한 사랑보다는 클 수 없다고 생각해요.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겠냐지만 분명 아픔의 차이는 있습니다. 첫째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일 겁니다. 첫째는 부모의 우성 유전자를 제일 많이 받고 태어나잖아요. 그래서 장점을 많이 갖고 태어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맏이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주머니를 부록으로 받게 되는 건가 봐요. 한마디로 첫째는 큰 사랑을 받지만 맏이가 되는 순간 그 어떤 책임감이 생기는 거죠.

그럼 외동이 좋은 걸까요? ㅎㅎㅎ


 저는 6남매인데 저와 큰언니와는 띠동갑이에요. 유 퀴즈에 나오신 맏이분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큰언니를 생각했어요. 우리 큰언니도 그런 마음인가-하고. 제 큰언니는 방송에 나온 맏이분들에 비하면 그냥 평범한 맏이입니다만, 이번을 계기로 생각해 보니 결혼하고도 친정 일에 여러 가지로 불려 다니고 끌려다닌 것 같습니다. 엄마가 가장 의지하다 보니 귀찮은 일도 많았겠죠. 제 기억엔 큰언니와 엄마가 싸우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 때 큰언니가 결혼을 해서 일찍 집을 떠나서 못 본 걸 수도 있지만 싸우는 장면은 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큰언니 말로는 자기도 어렸을 때는 엄마한테 많이 맞았다고는 하던데... ㅎㅎㅎ.

큰언니는 엄마도 닮고 아빠도 닮아서 부모 결합체 같은 느낌이랄까....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런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맏이가 하는 희생은 의무인 것처럼 당연하게 여겼었죠.

그게 왜 의무입니까? 의무 아닙니다. 누구도 맏이에게 그런 부담을 전가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부모건 맏이 건 중간이건 막내 건 누가 됐든 간에 가족에 대한 희생, 아니 가족에 대한 의미 자체가 희미해져 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잖아요. 이런 삭막한 세상 속에서 여전히 가족에 대한 희생을 하는, 세상에 흔하지 않은 맏이들과 맏이가 아닌데 맏이 같은 희생을 하는 자식들에게는 보다 조금 더 축복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넉넉하고 무탈하고 건강하여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행복하게, 부모님보다 좀 더 오래 살면 좋겠습니다, 우리 맏이 큰언니도.





가족에는 의무가 아닌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어쩔 수가 없어서’라면 하지 말고 ‘기꺼이’라면 해도 좋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되네요.


쾌청한 행복이 우리 큰언니와 그 외의 착한 맏이들에게 내려지기를 희망하며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502의 라디오브런치] 이야기 길잡이 이오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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