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말가 Jun 03. 2020

도시락 반찬 베스트 3

- 에피소드 -


급식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모두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두세 가지 반찬이지만 항상 다른 도시락을 싸주셨다.

오늘 먹은 반찬을 다음날 똑같이 싸주시는 일이 없었다.

보온 도시락으로 바뀌고 국이 하나 늘어도 도시락 반찬은 매일매일 달랐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졸업하고 10년이나 지난 뒤에나 깨달았다.

엄마의 도시락 반찬 중에 친구들이랑 나눠먹기 싫을 만큼 맛있었던 것,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몰래 혼자 까먹을 만큼 좋아했던 것 세 가지를 꼽아보았다.



3위

김치볶음이다. 

참기름과 김치의 짭짤한 알싸 매콤함이 살아있고 씹을 때의 톡 쏘는 듯한 수분감과 아삭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엄마가 직접 담근 김치가 맛있으니까 아무렇게나 볶아도 맛이 나긴 하지만 내가 볶은 김치볶음과 엄마가 볶은 김치볶음은 차원이 달랐다. 엄마의 김치볶음은 씹을수록, 먹을수록 숟가락을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2위

비엔나소시지다.

이건 자주 싸주시지 않았다. 우리 집이 부자도 아니었고 형제도 많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세 명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다.) 칼집은 꼭 세 줄로만 그어져 있다. 그리고 그게 보이도록 도시락에 담아놓으셨다. 도시락 반찬을 열었을 때 이 녀석을 발견하면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걸 친구들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몰래 먹을 수밖에....  어쩌다가 연결이 끊어지지 않은, 그야말로 줄줄이 비엔나가 들어있으면 그날은 그냥 좋은 날이 된다. 아, 줄줄이 비엔나!


1위

달걀말이다.

엄마의 달걀말이는 한마디로 "맛·있·다."

정말 진짜 환장하게 맛있다.

만들어준 엄마에게는 한 개만 주고 내가 모두 먹고 싶을 만큼 맛있다. 

간, 향, 채소와 달걀의 조화, 풍미, 쫀득함, 촉촉함 등등등등.

달걀을 완전식품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엄마의 달걀말이는 완전식품의 결정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김을 넣어 말은 달걀말이도 마찬가지다.

비린 맛은 전혀 없고 김의 질김도 없고 잘라먹었을 때 김이 딸려 나오는 일이 절대 없다.

어디에서도 이런 달걀말이는 먹어본 적이 없다.

해외 어디서도 먹어본 적이 없다.

엄마는 달걀말이의 장인이셨던 거다.     

김치볶음이나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는 엇비슷하게 흉내 내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엄마의 달걀말이는 흉내 낼 수 없다.


이 달걀말이는 더 이상 먹지 못한다.

이렇게 맛있는 엄마의 달걀말이는

이 하늘 아래에서는 다시는 먹을 수 없게 됐다.

작가의 이전글 착한 일 한 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