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리가 아닌 문자로 배우기 때문

1장. 공부가 어렵고 힘든 이유

by 신영환

세상에서 인간만이 가진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언어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소리로 된 언어라기보다는 문자를 사용하는 언어를 말한다. 어느 생명체도 인간을 제외하고는 문자를 사용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최초 언어의 기원은 농경문화가 확산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7000년 전이라고 밝혔다. 약 9000년 전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인들이 사용한 설형문자로 시기로는 기원전 4000년 경이고, 현재 나이는 약 6000살 정도가 되었다. 이 문자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중심으로 고대 오리엔트에서 점토판에 남겼던 글자를 의미한다. 비록 숫자 계산과 같은 단순한 표시였지만 그래도 최초의 문자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개인 간의 일상적인 소통이 아닌 무언가 독특한 용도로 쓰인 것이었다.

초기 문자는 대부분 사물을 본떠 그 사물이나 관념을 나타낸 상형문자로 다수를 위한 언어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지배 계층만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그 이후 고대 문자는 페니키아 문자와 같은 표음 문자(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기호로 나타내는 글자)로 발달하면서 점점 문자가 널리 사용되어 교역하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기원전 9세기에 이 문자는 그리스 지역에 퍼졌고, 그리스 사람들은 페니키아 문자를 개조해 모음 글자도 넣고, 일부 자음도 보충해서 자신들의 언어에 맞게 문자를 최적화시켰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철학의 근원지 그리스에서의 언어의 사용은 기존의 언어활동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의사소통 기능으로써의 언어의 역할과 더불어 당대 철학자들이 이끈 교육은 ‘대화’로서의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도 ‘대화’를 통해 제자를 양성했다. 또한 기원전 4세기 인도 지역의 석가모니도 제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비록 사용하는 문자가 있었지만, 언어의 기능은 ‘문자’보다는 ‘소리’를 통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상 문자의 활용이 활발해진 것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기원전 3~4세기부터다. 하지만 더 활발히 문자가 활용된 것은 서기 105년 중국 후한의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 이후라고 보면 된다. 종이를 만드는 기술인 초지법이 유럽에 전파된 것은 8세기 중엽으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이렇게 자세히 언어의 역사, 문자의 역사, 종이의 역사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하나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책의 역사가 짧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언어는 문자보다 소리로 더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인간의 뇌에도 ‘소리’에 대한 기능은 있어도 ‘문자’에 대한 기능은 따로 없다. 즉, ‘읽기’를 통해서 배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문해력 수업》의 저자인 전병규 작가도 우리 뇌에는 읽기를 위한 부위가 없는데 어떻게 글자를 읽을 수 있는지 설명했다. 뇌가 읽기를 위해서는 분업과 협업이 선택한다고 강조하며, 4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했다. 첫째 문자를 보는 일, 둘째 본 문자를 소리로 바꾸는 일, 셋째 소리를 의미로 바꾸는 일, 넷째 의미를 감정과 생각으로 바꾸는 일 이렇게 4단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루 15분 초등 책 읽기의 기적》에서도 ‘학습을 통해 글자와 발음을 인지하는 것은 글자의 의미를 파헤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그리고 앞에서 소리를 의미로 바꾸고, 의미를 감정과 생각으로 바꾸는 단계 훈련이 제대로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읽기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원초적인 시각적 반응과 청각적 반응을 넘어서 ‘이해’의 단계로 가야만 제대로 된 ‘읽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읽기는 ‘문자’를 해독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물론 공부할 때 수업을 듣는 건 ‘소리’에 의한 언어를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해와 암기라는 완전학습의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면서 쓰인 글을 읽어야 한다. 따라서 공부는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 즉, ‘문해력’이 필수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펴본바 언어학적인 관점에서도, 뇌과학적인 관점에서도 ‘읽기’라는 행위는 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다행인 건 우리의 뇌는 가소성이 있다. 생명체에서의 가소성은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다. 따라서 뇌는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걸 익히거나, 진화를 거듭하며 생존에 필요한 능력을 길렀다.


예를 들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직립보행을 하면서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말하기에 좋은 구강 구조를 갖게 되었다. 덕분에 인간은 처음에는 소리를 통해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나아가 문자를 만들어서 더욱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문자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지는 않지만, 읽기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문해력을 기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우리가 글자를 읽고,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덕분이다. 물론 문자가 있는 사회에서 문맹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생활에 필요가 없다면 굳이 문자를 익힐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문자라는 건 필수가 아니라 인간에게는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문맹이어서는 안 된다. 지식과 정보가 모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옆에서 책을 읽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대의 철학자와 선인들처럼 ‘대화’를 통해서만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항상 유한한 삶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제약을 없애기 위해 문자를 기록하여 책으로 만들었고, 지금은 책이 널리 보급된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공부는 이렇게 보급된 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소리보다는 문자를 거칠 수밖에 없다. 고로 문해력을 기르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공부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존의 문두루쿠족은 숫자 ‘2’보다 큰 수를 셀 수 있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아마존의 또 다른 원주민인 피라항족의 언어에는 숫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행복하다. 물고기를 한 마리 잡지 못해도, 오두막이 폭풍우에 날아가도,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웃는다고 한다. 그만큼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대자연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문명이 크게 발달한 곳에 사는 우리로서는 그만큼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문명 세상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더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하는 공부도 ‘사회화’라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기에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노력하면 필요한 능력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수를 계산하는 산수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공식을 적용하는 수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더 잘할 수 있다. 이처럼 방법을 알고 노력하면 읽기 능력도 기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다룰 이야기를 살펴보며 ‘문해력’을 차근차근 길러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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