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말 70%는 한자라는 사실

1장. 공부가 어렵고 힘든 이유

by 신영환

과연 우리말에는 한자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을까? 1920년 조선 총독부가 만든 조선어사전에는 한자가 70% 들어 있다고 했다. 이는 당시 침략자들이 사전에 우리말을 30%만 싣고 나머지는 한자로 채웠다고 한다. 나중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51만여 개 낱말을 조사한 결과, 한자의 비중은 57%였다. 하지만 사전에만 실렸을 뿐 일상생활이나 전문 분야에 전혀 사용되지 않는 낱말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국립국어연구원이 2002년 발표한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를 보면 우리말의 사용 비율은 우리말이 54%, 한자어 35%, 외래어가 2%였다. 우리말 70%는 한자라는 통념은 사실상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그래도 한자가 우리말의 상당 부분의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모든 나라의 언어에 대한 특징이 나타나는 이유는 그 나라의 역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세계 공용어로 쓰이는 영어도 순수 영어만 있지 않다. 영어 또한 로마어, 그리스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유럽 언어의 영향 아래 지금의 영어가 완성되었다. 이는 영어의 본고장인 영국의 역사를 이해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왜 우리말에는 한자가 이렇게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언어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지배 계층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가 속한 중국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우리 언어가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는 서민들에게도 문자를 가르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지식인층과 같은 기득권을 가진 계층은 모두 한자를 사용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학문에는 전문 용어가 쓰인 것이었다. 심지어 일본의 지배를 받은 시기에도 새로운 분야의 학문과 지식을 일본어를 통해 번역한 것이었기에 순수 우리말이 아닌 한자로 쓰였다.


태권도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이라면, 용어를 그대로 썼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며 생긴 용어는 한자어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을 읽더라도 한자를 잘 모르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자 교육의 중요성은 대두되었지만, 2000년대부터는 한자 사용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불편을 준다고 생각하여 우리말 순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2004년 국한문 혼용 문장의 최후 보루였던 서울대학교 ‘대학국어’가 한글 전용으로 바뀌면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 결과 많은 교재에서도 한자가 사라졌고, 신문 등 매체에서도 한자를 쓰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한자의 벽에 부딪히는 일은 줄었지만, 여전히 문어체로 쓰이는 글에서는 한자어 비중이 크다. 특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교과서에 한자가 적히지 않아도 학문에 쓰인 용어는 한자어이기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도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처럼 문어체에서 한자어를 많이 쓰고, 고급 어휘가 대부분 한자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근대에 동아시아로 외국의 사회·과학 지식이 유입되었을 때, 한자어로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술용어에는 한자어 비중이 높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으로부터 어휘력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자를 잘 모르니 책에 나오는 학술용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동음이의어의 경우에는 어떤 한자로 쓰였는지에 따라 뜻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이를 분별하지 못하니 잘못 이해하거나 뜻을 전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이명학 교수도 한자 공부는 학교 교육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교과서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과 단어가 대부분 한자어이므로 그것만 제대로 이해해도 학업 성취율이 절로 높아질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역으로 생각해보면, 한자를 잘 모르는 세대인 요즘 학생들이 어휘력 부족 현상으로 인해 문해력이 부족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BS 당신의 문해력》에서도 어휘력 점수가 낮은 학생의 경우에 쉬운 단어가 나오면 글을 끝까지 읽었지만, 어려운 단어가 나오기 시작하면 글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고 밝혔다. 어휘력 부족이 곧 읽기를 중도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 꼬집었다. 그러면서 평소 독서량이 많고 어휘력 점수가 높은 아이들은 어려운 단어가 등장해도 흐트러짐 없이 끝까지 읽는 힘이 있다고 했다.


이를 구체적인 예시로 들어보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의 경우라면 교과서를 읽을 때도 그렇지만 시험 문제를 풀 때도 어휘력 수준에 따라 학업 성취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문해력을 갖기 위해서는 꼭 어휘력을 갖춰야 한다. 어휘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리말로 공부하는 한 ‘한자’ 공부는 꼭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공부가 어려운 이유를 한자 학습 부족이라고 밝히면, 분명 또 너무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한자 공부를 강요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안타깝게도 읽기 능력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듣기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게 옳다. 그래서 똑똑한 선조들이 어린 시절 서당에서 소리를 외우는 데 더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쉽게 말해서 아직 언어 발달이 잘 안 된 아이들에게 한자 읽기부터 강요하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기초 한자를 익히고 그걸 어딘가 적용하여 고급 한자로 이어지는 공부를 어릴 때부터 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독서를 통해 자연스럽게 어휘를 통째로 익히며 뜻을 알아가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연역적인 방법이 아니라 귀납적인 방법을 써보라는 말이다.


《하루 15분 초등 책 읽기의 기적》 책에서도 문해력 향상을 위한 어휘 훈련을 할 때, 한자어 하나와 연결된 다른 어휘를 떠올리는 훈련을 해보라고 권한다. 바로 이것이 어휘력 향상의 본질이다. 굳이 한자 모양을 외우지 않더라도 어휘에 쓰인 한자의 뜻을 알면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내 경험과 연결 지어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다.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한자 2급 공인 인증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그때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의고사 20회분의 문제를 거의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시험 결과 80점이 넘어서 합격할 수 있었지만, 막상 실생활에서 그렇게 어려운 한자를 쓸 일이 없었다.


그래도 도움이 된 것은 기초 한자를 익힌 덕분에 지금도 책을 읽을 때 모르는 어휘가 나오면 내가 아는 한자어 중에 어느 것과 관련이 있을지 문맥을 통해서 유추한다. 비록 한자를 정확하게 쓰지는 못하지만, 문맥을 통해 뜻을 예측하는 힘은 남아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끔 어휘를 유추할 때 한자의 뜻을 틀릴 때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나름 한자 2급 자격이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쉬운 한자도 모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자 2급 자격증을 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량을 늘리고 문맥을 파악하며 어휘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가는 시간에 더 투자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훈련하다 보면 한자로 이루어진 어려운 용어를 유추하는 힘이 생길 것이고, 어휘력이 향상되면서 자연스럽게 문해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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