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문해력과 공부의 상관관계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서울대학교에서 선정한 권장도서 100선을 말한다. 그런데 과연 이 추천 도서를 읽는다고 해서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되고, 좋은 성적을 받아서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서울대에서 추천하는 도서를 읽기만 해서 서울대에 진학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전문가들은 추천도서를 제시하는 것일까?
서울대학교에서 선정한 권장도서 100선은 한국문학 17권, 외국문학 31권, 동양사상 14권, 서양사상 27권, 과학기술 11권으로 5개 분야에 걸쳐있다. 이 책들은 과거의 일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기에 ‘고전’이라 일컫는다. 고전은 또한 지식과 품성을 갖춘 교양인 혹은 지성인으로 거듭나도록 도울 수도 있다. 다행히도 현재 상황에 적시적으로 맞는 책들을 추렸기에 현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사실 추천도서 목록이 주는 의미는 꼭 100권의 책을 다 읽으라는 말은 아니다. 진정한 핵심은 이 책을 읽고 책 속에서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걸 찾으며 연결하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의대 혹은 공대에 가려는 학생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의학자 혹은 공학자가 가져야 할 철학적 사유 능력을 기르고, 윤리적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해서다. 또한 책 속에 드러나는 노벨상 수상자의 모습을 통해 배울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학이나 고전은 어떤가? 과거 역사에 기록된 사건을 통해 현재와 연결되는 부분을 찾기 위한 혹은 비문학적인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수성, 상상력 등의 영역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 있다. 의사나 공학자는 전문 지식을 가진 매우 이성적이기도 해야 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풍부한 상상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동양 사상이나 서양 사상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만일 의대나 공대에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이 자신이 연구하려는 의학이나 공학 분야의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할지를 알기 위해서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이렇듯 서울대 추천도서 100선의 의미는 객관적인 사실이나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통해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를 배우기를 더 바랄지도 모른다. 학생으로서는 공부하는 태도나 자세로 이어질 수 있다.
동양 사상 분야를 살펴보면 ‘주역’이라는 책이 눈에 띈다. ‘주역’은 본래 고대로부터 점을 쳐보는 책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이 책을 점치는 책이라 생각한다. 주역을 점괘를 보는 책으로 여기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책의 본질은 인생을 살아갈 때 필요한 수양서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자신의 남은 수명이 조금만 더 있으면 '주역'을 더 연구하고 몰두하고 싶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공자는 주역을 ‘위편삼절(韋編三絶)’ 했다고 전해진다. ‘위편삼절’이라는 말은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많이 읽었다.’는 의미로 전해지는데, 이는 종이가 없던 과거에는 대나무에 글자를 써서 책으로 만들어 사용했기에 나온 말이다. 대학자인 주자도 주역으로 점을 쳤다고 하고,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도 주역은 태워지지 않고 보전되었다. 비록 점치는 책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서적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주역에서 답을 구하고자 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는데 선택의 갈림길에서 확신이 없을 때가 있다. 이런 순간에 점이라도 쳐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든다. 바로 이때 주역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주역은 자신의 갈망을 담은 질문에 괘를 통해 답을 준다. 그 답은 확신을 위한 것이다. 이렇듯 주역은 인간에게 내재된 불확실성(불안과 공포)과 같은 부정적인 요인이 발현될 때 스스로를 다스릴 힘을 주는 책이다.
물론 현대판 해석으로 이뤄진 주역 책은 다른 동양 사상 책들과 비슷하게 교훈을 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여나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이나 맥락 속에서 비슷한 사례가 연결된다면 느끼거나 깨닫는 지점이 발생할 것이다. 또한 음양의 조화를 바탕으로 균형을 강조하는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역에서는 모두 섭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이어지기에 어떤 상황이라고 해도 새삼스럽지 않을 수 있다.
나도 독서를 많이 하게 되면서 해결하고 싶은 지점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고전’을 통해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 일이었다. 수험생들에게 많이 추천되는 책인 ‘데미안’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물론 10대에도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이 많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일까 데미안에 나오는 자아에 대한 성찰을 다양한 관점으로 해볼 수 있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책을 읽으면서는 항상 자신이 처한 현실에 투영해보게 된다.
단순히 서울대에서 추천하는 도서를 문해력, 독해력, 배경 지식 등 단순한 결과를 얻으려 한다면 오산이 될 것이다. ‘고전’이라 불리는 추천도서는 독자에게 다양한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하고,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자신의 상황과 연결 짓도록 하면서 사고력을 확장하게 만드는 책이라 생각한다. 사고력 확장은 결국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에 공부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입학본부 웹진 ‘아로리’에 가면, 서울대 지원자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을 소개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찾아본 합격생들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 몇 가지 소개해볼까 한다.
사회과학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합격생은 책을 통해 고등학교 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도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예로 종 차별주의와 동물 착취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인간 중심적 사고를 반성했고, 정의 이론을 다루는 철학책을 읽으면서 인권을 바라보는 경제적 관점, 사회적 관점, 문화적 관점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얻었다고 했다. 가족주의를 다루는 책을 읽으면서 가족의 기능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었고, 다양한 여성주의 관련 책을 읽으며 ‘교차성 이론’을 배우고 여성주의의 확장 가능성과 연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독서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 무너지고, 재구성되고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또한 독후 활동으로 여러 독서 토론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시각을 접한 것이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얻은 새로운 시각은 고등학교 생활 전반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고, 발표하거나 보고서를 쓸 때 책을 참고하여 더 다양하고 풍부한 논의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끝으로, 책을 읽으며 대학 공부를 상상하고, 동기 부여를 받았다고 했다.
비록 책에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기에 한 명의 사례만을 소개했다. 그래도 분명히 느끼는 점이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사이트에는 학과별로 합격자가 가장 많이 읽은 책 리스트 등 다양한 정보가 있으니 독서를 하는 것이 왜 좋은지 그 의미를 직접 찾아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합격생들의 독서 목록을 살펴보면, 서울대에서 추천하는 도서 100선을 읽지 않았더라도 자신에게 의미가 있었던 책에 대한 소감을 분명히 드러낸 경우에도 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서울대 추천도서의 본질은 100권을 모두 읽어보라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추천도서일 뿐이라는 말이다. 내가 책을 통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추천할만한 도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공부의 본질이자 확장해야 할 방향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서와 공부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이런 부분이 본질이라는 걸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