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암보다 무서운 학습된 무기력

실패의 반복은 학습으로 이어진다.

by 신영환

2011년 처음 교직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나는 10년 차 교사다.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학생을 만났다. 공부 잘하는 학생, 예의가 바른 학생, 학교생활 성실하게 하는 학생, 장기와 재주가 많은 학생 등 정말 다양한 학생을 만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항상 나는 학교생활을 잘하는 학생보다 학교생활을 어려워하는 학생들한테 더욱 관심이 갔다. 아무래도 많이 아프고 힘들었던 나의 과거 경험이 한몫했다. 그 아이들은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더욱 그랬다.


특히 무기력한 학생들을 발견하면 더욱 적극적으로 상담해왔다. 그런데 상담할 때마다 항상 의문이 드는 점이 있었다. 과연 그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무기력한 학생이었을까? 과거에도 계속 그랬는지 물어보면 답은 비슷했다. 그들도 과거에는 그렇게 무기력하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처럼 성실하게 수업 듣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점점 방황을 시작했던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몇몇 학생은 중학교 때까지 일명 엄친아라고 불릴 정도로 모든 방면에서 뛰어났었다. 그중엔 이름만 들어도 전교생이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공부 잘하기로 유명했던 아이도 있었다.


특별히 특목고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중학교 때는 내신 성적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내신 성적이 매우 중요해진다. 특히 수시로 70% 이상 대학에 진학하는 입시제도에 따라 내신의 중요성을 더욱 무시할 수 없다. (2022학년도부터는 수시 60%, 정시 40% 비율로 조정될 예정) 여러 중학교에서 올라온 다른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기에 더 많이 부담된다. TMI(Too Much Information)이기는 하지만 철밥통처럼 느껴지는 군대에서도 진급할 때마다 그 집단 안에서 30% 안에 들어야 다음 진급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하니 사회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집단이 더 커지고 경쟁이 더욱 심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고등학교 생활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처음 치열한 경쟁을 경험하는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어려운 시기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학생들은 내신 성적이 낮았다. 중학교 때까지 아무리 잘했어도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본 내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첫 실패를 시작으로 계속 성적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렇게 계속 실패를 거듭하면서 그들은 방황을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고등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더구나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특목고이기에 학생들 스스로 성적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무기력한 학생이 되어 갔다.


사실 태어날 때부터 무기력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그게 생존 본능이다. 따라서 무기력감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무기력함을 학습하게 되는 것일까? 쉽게 말하자면, 학습된 무기력은 반복되는 실패로 인해 생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변하지 않는 상황일 때 더욱 강화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학습된 무기력과 관련된 연구 결과가 많이 있다.


1957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커트 리히터 교수는 들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따뜻한 물이 담긴 통에 야생 들쥐들을 풀어놓고 60시간 동안 수영하게 하였는데, 처음 몇 분 동안은 열심히 헤엄치다가 다른 쥐들에 비해 금방 익사한 쥐들에서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그 쥐들은 우리에서 물통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커트 리히터 교수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지만 풀려나지 못했던 경험을 한 쥐들이었다. 이를 통해서 그는 혐오적인 자극에 노출될 때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무기력을 느낀 쥐들이 물통에서도 금방 헤엄치기를 포기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학습된 무기력’을 지지하는 초기 연구 결과로 볼 수 있다.


1967년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24마리의 개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상자에 넣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그룹 A에게는 코로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충격을 스스로 멈출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그룹 B에게는 코로 조작기를 눌러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고, 몸이 묶여 있어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룹 C는 비교 집단으로 상자 안에 있었으나 전기충격을 주지 않았다.


24시간 이후 이들 세 그룹 모두 다른 상자에 옮겨 놓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옮겨진 상자에서는 중앙에 있는 담을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룹 A와 그룹 C의 개들은 중앙의 담을 넘어 전기충격을 피했으나, 그룹 B의 개들은 전기충격이 주어지자 피하려 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결국, 그룹 B의 개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해도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했다고 볼 수 있다. 마틴 셀리그먼은 혐오 자극이 있어도 회피 불가능한 전기충격을 경험한 개들은 회피 가능한 전기충격이 주어진 경우에도 피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 하였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서커스단에서 자란 코끼리 이야기가 있다. 아기코끼리는 어릴 때부터 줄에 묶여 있었다. 줄을 끊을 힘이 없던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실패 경험 때문에 성장이 끝난 후에도 부실한 줄에 묶여 있어도 탈출하지 않았다.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결과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대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 이론은 이후 다양한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포로들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그들은 그저 몸을 움츠린 채 가만히 있었다. 부모로부터 학대당하는 어린아이들에 게도 피해 상황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무기력과 체념 현상을 살펴볼 수 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혐오 자극에 계속 노출되면서 상황을 피할 수 없거나 바꿀 수 없게 되면 무기력을 학습한다. 학교에서 공부로 스트레스받고 그게 혐오 자극이 되어서 지속해서 작용한다면 충분히 무기력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인 켄드라 체리(Kendra Cherry)의 연구에 따르면, 학습된 무력감은 또한 불안, 우울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삶의 과거 사건들에 대해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 아이들은 미래의 일을 전혀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자신이 하는 어떤 것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습된 무기력이 있는 학생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Failure to ask for help(도움 요청하는 것 실패)

· Frustration(좌절감)

· Giving up(포기)

· Lack of effort(노력 부족)

· Low self-esteem(낮은 자존감)

· Passivity(수동성)

· Poor motivation(동기 부족)

· Procrastination(할 일 미루기)


특목고에서 근무하는 담임교사로서 학부모와 상담하며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아이가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곧잘 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성적이 크게 떨어진 이후 방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극복해보려고 노력했었는데 계속 성적이 오르지 않자 이제는 포기한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 그 아이들을 살펴보면 위의 특징을 대부분 갖고 있다.


나도 10대 때 ‘학습된 무기력’ 때문에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두 번이나 실패를 경험했다. 소위 명문고를 다녔지만 내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내 상황은 오히려 절망의 늪으로 변하고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 자신감 넘치고 쾌활했던 내 자아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갔다. 나는 한때 공부를 잘했던 학생에서 남들보다 아무것도 잘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변해갔다.


두 번째 대학 입시 실패를 경험한 후, 이 세상에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나는 자살을 결심했다. 더 웃기는 건 죽음이 두려워 자살할 용기가 없는 자신을 보며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겁쟁이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무기력한 사람이 되었으면 생을 마감하는 일조차 못 해낼까.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고 할지라도 고등학교에서 계속 실패를 경험하면 자신감이 사라지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는 무력감과 절망감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이처럼 학습된 무기력은 통제할 수 없었던 상황 자체보다 미래의 상황에 대해서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더 강화된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적은 무력감이다.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죽은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시도조차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게 가장 미련한 짓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열정적으로 꿈을 찾아야 하는 10대들에게 학습된 무기력이란 암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의사들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이 암이라고 한다. 반면에 교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학습된 무기력이다. 심지어 몇몇 교사는 암보다도 더 무서운 게 수업 시간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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