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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Jul 01. 2020

<2> 실패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귀인이론: 성공이나 실패의 원인을 찾는 방식에 대한 이론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말이 있다. 고3 담임 3년 차가 되던 해, 나는 대학입시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학생들의 성적과 생활기록부 평가 내용만 봐도 대략 어느 대학을 갈 수 있을지 짐작했다. 입시상담을 앞두고 학생들의 성적을 분석하면서 우리 반에서 최대 세 명까지 서울대학교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명은 내신 성적이 매우 우수했고, 한 명은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매우 우수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명은 서울대는 고사하고 연고대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정말 나로서는 그 아이들이 운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한 명은 우리 반 내신 1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수능 모의고사 1등이었다. 일류대를 수십 명 보내는 특목고에서 어떻든지 간에 전교 10등 안에 드는 성적을 내고 있었으니 이변이 없는 이상 그 아이들이 일류대학에 가는 건 누구나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결과가 좋지는 못했다. 대학 서열화하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려고 피나게 노력했던 아이들의 결과를 보며 상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상황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해봤다.     


우선 내신 1등이었던 학생은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일류대학 세 군데 모두 1차 서류평가를 통과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군데는 면접을 잘 못 봤는지 결국 불합격했다. 다행히 한 군데 입시 일정이 남아있었기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비록 앞선 대학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남은 대학에서 본 면접은 매우 잘 본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졌다. 면접을 보고 나오는 데 복도 감독관이 잠시 조용히 불러 차근차근 실격 이유를 설명했다고 했다. 면접실에 들어가기 전, 대기실에서 준비한 자료를 끝까지 살펴보느라 깜박하고 노트북을 제출하지 않고 계속 갖고 있었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보고 신고하여 휴대 금지 물품 사용을 이유로 실격처리가 되었다. (참고로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전자기기는 휴대 금지 물품으로 제출해야 한다.)     


다행히도 목표로 하는 대학에 대한 전형이 수능 이후에도 남아있었다. 평소처럼 수능 성적도 그 학교 최저 등급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나왔다. 이제 남은 건 면접을 잘 보는 일이었다. 비록 지난번 실격처리가 되어 불합격했지만, 면접은 잘 보고 나왔기에 여전히 자신감이 있었다. 또한, 그때와 같은 사소한 실수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면접 문항 중 생각지 못한 문항이 나왔다. 그 문항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면접 보고 나오면서 망했다고 생각했다. 결국, 한 번에 최종 합격하지 못하고 예비 7번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추가합격 일정 하루 앞두고 예비 5번에서 그 이상 번호가 빠지지 않았다. 그때 마침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이 학생과 같은 학교 같은 과에 다른 전형으로도 추가 합격했다. 딱한 사정을 알고 있던 그 학생이 이 전형을 포기하고 다른 전형으로 넘어가면서 바로 코앞 예비 6번까지 다가왔다. 추가합격 최종 발표가 그날 밤 9시까지였으나 변화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 반 내신 1등 학생은 당연히 갈 것만 같았던 일류대학에 그해에는 갈 수 없었다. 정말 지지리도 운이 없던 이 학생에 비해 예비 6번을 받은 학생은 천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면 참 씁쓸하다.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도 이 학생이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이유가 ‘운’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입시가 끝나고 졸업하기 전 그 학생과 상담했을 때, 담담하게 자신의 실패 원인을 ‘운’이 아닌 ‘자신의 부족한 노력’ 때문이라고 말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실 그 학생도 처음에는 “나는 왜 이토록 운이 없지?”라고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돌이켜보니 결국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기에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 이야기는 조금 간단하다. 내신 성적보다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매우 우수했기에 이 학생은 정시에서 좋은 결과를 노리고 있었다. 모의고사에서 틀리는 문제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으니 일류대학 진학은 따놓은 셈이었다. 근데 그해 수능 국어영역의 문항 난이도가 많이 높았다. 실제 수능 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느끼는 체감은 더욱 컸다. 국어에서 거의 틀리지 않았던 이 학생도 수능 1교시 국어영역을 보면서 여러 개 틀렸다. 거의 만점을 목표로 했는데, 이미 국어영역에서 많이 틀렸으니 정신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머지 과목 문제를 풀면서도 1교시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수능 고득점이 아닌 어느 대학의 수능 최저 점수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이 그렇게 목표로 했던 일류대학 진학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 학생과도 수능 시험 이후에 상담을 진행했다. 기대를 많이 했던 학생이라 지도했던 교사로서도 많이 안타까웠다. 물론 당사자는 얼마나 더 괴로웠을까 생각하면 내 감정은 비교조차 안 될 것이다. 수능 날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 학생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위로한답시고 시험 문제가 어려웠던 건 단지 그해 ‘운’이 없었기 때문이니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말했다. 근데 이 학생도 자신의 실패 원인이 ‘운’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자신’에게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내신 1등 학생과 비슷하게 실패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서부터 찾으려 했다.      


이토록 두 학생의 대학 진학 실패에 대한 분석을 자세히 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 학생이 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보통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특히 문제 발생 혹은 실패 경험의 경우 그 원인을 찾고자 노력한다. ‘원인을 되돌아본다’ 하여 귀인(歸因)이라 말한다.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귀인 이론이란 ‘성공이나 실패의 원인을 찾는 방식에 대한 이론’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건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개인의 감정, 미래 수행 기대, 동기 따위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는 누구나 경험하지만, 실패의 원인을 찾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보통 귀인의 요인은 상황, 운, 시험 난이도 등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과 능력, 성격(기질), 노력, 실수 등과 같은 내부적인 요인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수학 시험을 망친 학생이 있다고 가정하자. 만일 시험이 어려워서, 혹은 이번엔 운이 없어서, 아침에 몸이 안 좋아서 시험을 못 봤다는 식으로 말하면 이 학생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귀인하고 있다. 반면, 수학 실력(능력)이 부족해서, 많이 긴장해서, 공부를 많이 못 해서, 혹은 사소한 계산을 실수해서 시험을 못 봤다고 말한다면 이 학생은 내부적인 요인으로 귀인하고 있다.      


사전적 정의와 같이 어떻게 ‘귀인’ 하느냐에 따라 미래 수행에 대한 기대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요인을 통해 귀인 하는 게 좋은지 알 필요가 있다. 우선 외부적인 요인으로 귀인 했다면 나의 탓이 아닌 남의 탓이기 때문에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기 어렵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이 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할 텐데, 내가 문제가 없으니 내가 변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반면, 내부적인 요인으로 귀인 하는 학생은 적어도 문제를 ‘나’로부터 인식하고 있다.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할 테고, 이번에 많이 긴장했다면 다음부터는 긴장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할 테고, 공부 시간이 부족했다면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게다가 실수로 문제를 틀렸다고 하면 실수를 줄이기 위해 더욱 집중하려는 노력을 보일 것이다.      


이처럼 실패의 원인을 내부 즉, 자신으로부터 찾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실패를 막는 방법이다. 근데 내적인 요인을 찾았음에도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계속되는 실패 속에 자신의 능력을 탓하게 되면 학습된 무기력이 찾아온다. 이번엔 많이 긴장해서 그랬다고 생각하면 지식을 쌓으려는 노력보다는 감정적인 요인을 제거하는 데 너무 에너지를 쏟게 된다. 작은 실수로 인해 시험을 못 봤다고 생각하면, 완벽하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어도 실수로 인해 정답을 유추해내지 못했다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면 담임교사로서 매번 상담한다. 근데 매번 실수로 틀린 문제가 있어서 점수가 안 나온 거라고 말하는 학생이 정말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실수도 실력이다.’라고 따끔하게 충고를 한다. 처음에 모르고 한 실수는 실수가 맞다. 하지만 두 번 이상 반복되는 실수는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그건 실력이 된다.


또한, 나는 수능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학생들에게 해주는 조언이 있다. 자신이 보는 시험 문제가 어려우면 다른 사람도 모두 어려운 것이고, 문제가 쉬우면 나만 쉽다고 생각하라고 말한다. 시험 난이도 때문에 자신의 실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까 해서 노파심에 항상 해주는 조언이다.      


이렇게 내적인 요인에 귀인 하는 것은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된다.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노력’에 귀인 하는 것이다. 비록 두 학생 모두 일류대학은 못 갔지만, 자신이 원하는 학과가 있는 다른 대학에 진학했다. 근데 대학에 다니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진로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반수를 했다. 즉, 대학 생활과 재수를 병행했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는 많이 어렵고 힘든데 이 두 학생은 결국 일류대학 중에 한 군데에 각각 진학했다. 다행히 이번엔 면접 때 노트북을 제출하지 않거나, 수능 시험 때 벌벌 떨며 시험을 보지 않았다. 이들의 반수 성공 비결은 자신들의 부족한 ‘노력’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은데 있다.


사람들이 실패를 경험하면 대부분 원인을 내가 아닌 밖에서 찾으려 한다. 난이도가 정말 높았던 2002학년도 ‘불수능’을 경험하면서 나는 왜 이리도 운이 없을까 생각했다. 내가 시험을 못 본 건 다 시험 문제가 어려웠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깝게 틀린 문제는 실수해서 틀렸다고 생각했다. 학습된 무기력으로 방황하며 시간을 낭비했던 나의 노력 없는 시간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었다. 그게 내가 대학입시를 두 번이나 실패했던 큰 이유인데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제는 알지만, 그때의 시간을 되돌릴 수가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실패를 경험한 학생들에게 ‘자신의 노력’에 귀인 하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실패는 자신의 ‘노력 부족’ 임을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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