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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Jul 03. 2020

<3> 미성숙한 존재라서 미안해

인간의 불안한 감정에 대하여

고3 담임을 하면서 학부모와 상담하며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다. 자녀가 고3이 된 이후 스트레스가 심한지 집에서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벽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는 아이, 특별히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그새 눈물을 흘리는 아이,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일에도 미친 듯이 크게 웃는 아이, 집에 있는 인형을 붙들고 학교에 가기 싫다며 우울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는 아이. 부모로서는 도저히 이런 행동하는 자녀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고쳐줄까 하다가도 혹여나 아이 성격이 삐뚤어지거나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지 않을까 해서 망설이게 된다. 어디에다가 말을 할 수 없으니 학교에서 매일 같이 자녀와 지내고 있는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를 건다.  

         

담임교사를 하며 학부모로부터 종종 전화를 받는다. 대부분은 자녀에 대한 상황을 알리거나, 고민이 있을 때 상담하고자 연락한다. 주로 집에서는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는데, 혹시 학교에서도 똑같은지 궁금해하는 내용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별로 힘든 티를 내지 않는다. 아무래도 편하게 자신의 감정을 보일 수 있는 부모나 형제한테 솔직하게 행동을 보이는 것 같다. 처음 이런 전화를 받았을 때는 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안심시키려고만 노력했다. 하지만 뇌 발달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지식을 조금씩 얻게 되고부터 10대들의 감정이 그렇게도 불안한지 알게 되었다.     


미국의 신경학자인 피터 프레스맨(Peter Pressman)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보다 뇌의 비중을 훨씬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전두엽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을 조절하는 뇌의 부분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라는 말은 결국 인간만이 이성을 갖고 있다는 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빅 브레인》의 저자이자 행동과학을 연구하는 김권수 교수는 우리의 뇌에서 전두엽은 이성적 사고와 판단, 추상적 사고, 행동과 감정 조절, 창의성, 공감과 같이 인간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부위라고 한다. 

          

청소년기의 뇌의 발달은 전두엽의 신경세포가 가장 왕성하게 성장한다. 신경세포가 성장한다는 말은 세포분열이 많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즉, 변화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다. 변화라는 것은 불안정한 상태를 의미하고, 아직 미성숙한 상태를 의미한다. 뇌에서 감정을 주관하는 곳은 뇌의 중간에 있는 편도체라는 곳인데 전두엽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았으니 이 편도체를 통제할 수 없다. 그래서 제대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 정말 별일도 아닌데도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청소년기에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다. 뇌 발달과 마찬가지로 자아도 발달하는 시기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을 바탕으로 감정에 충실한 자아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자아로 변화한다. 나아가 자아는 사회화를 통해 도덕적 이상향을 추구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우리의 자아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그 세 가지 자아는 본능적이고 쾌락을 중시하는 ‘원초아(id)’, 합리적인 성향을 가진 ‘자아(ego)’, 도덕적이고 이상향을 추구하는 ‘초자아(super ego)’이다. 원초아(id)는 태어날 때부터 형성되고, 자아(ego)는 3~4세 정도부터 발달하며, 초자아(super ego)는 6~7세부터 청소년기까지 발달한다.     


프로이트의 자아와 관련 자세한 설명보다 더 중요한 건 청소년기에 감정이 왜 불안한지이다. 청소년이라고 하지만 아직 성인이 아니기에 자아도 미성숙할 수밖에 없다. 실제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미성숙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 많다. 그런데 아직 자아 발달이 다 이뤄지지 않은 청소년이니까 자아가 불안정하다. 자아가 불안정하다는 말은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자아를 형성했다기보다는 본능적이고 쾌락을 중시하는 감정에 더 휘둘릴 수 있다는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나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나 많은 변화를 경험하는 청소년들의 불안정한 감정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런데 이미 성숙한 부모가 이런 미성숙한 자녀를 보고 있으니 답답하고 속이 터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문제는 몸이 이미 성인만큼 다 커버렸으니 정신적인 부분도 성숙할 것이라 기대하는 심리에 있다. 물론 자녀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큰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 때는 오히려 약이 아니라 독으로 돌아오게 된다. 자녀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그것은 또한 잔소리로 이어진다. 잔소리를 들은 자녀는 기분이 상하고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선다. 공부하기에도 벅찬 시기에 이렇게 감정 소모를 하고 있으니 고3 생활이 순조로울 수가 있을까?     

     

나의 지난날 두 번의 대학입시 실패 요인 중 하나는 감정 통제와 관련이 있다. 그때 나도 뇌의 전두엽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었고, 자아도 미성숙하게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성적이 안 나오는 착잡한 환경 속에서 내 감정은 다른 친구들보다 더 심하게 흔들렸다고 생각한다. 임시방편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불안한 감정을 글로 쏟아내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문예 창작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지금 읽어보면 너무 유치하고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지만, 불안했던 내 감정을 ‘시’로 표현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보면 매우 건전하게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공부를 할 시기에 다른 일에 시간을 투자했으니 결과적으로는 대학입시 실패로 이어졌다.           


재수할 때도 마찬가지로 과연 내가 수능을 만점에 가깝게 맞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감에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았다. 거기에 부모님의 큰 기대까지 부담감이 더해졌다. 고작 1년 더 나이를 먹었다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졌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19살이나 20살이나 도긴개긴이다. 성인이 되었다고 했어도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였고, 수험생 신분도 불안정한 상태였다.    

       

감정이 불안하면 잘할 수 있는 것도 제대로 실력 발휘가 어렵다. 언어 습득과 관련된 이론에서 학습자가 언어를 배울 때 감정적으로 불안요소가 큰 방해요인이 된다고 말한다. 그것을 ‘정의적 여과(affective filter)’라고 한다. 언어를 습득할 때 이러한 감정적 여과 장치가 크게 작용하면 자신감도 없어지고 불안감이 높아져 언어 습득을 원활하게 할 수 없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인들의 영어 습득 과정이 해당된다. 많은 한국인은 틀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특히, 외국인과 대화할 때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 한마디로 못 내뱉고 포기한다. 그렇게 말할 기회를 잃게 되어 영어 실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지 않았어도 청소년기에는 정서적으로 불안정, 불완전, 그리고 미성숙하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것은 누구나 이런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정된 상태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과정이 없으면 결과가 없는 것처럼, 불안정한 상태가 없으면 안정이라는 상태도 없다. 오히려 힘든 과정이 있어야 단단한 자아가 만들어질 수 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인생에 있어서 바닥까지 갔던 실패를 경험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담담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대에는 내가 다니는 대학을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웠다. 아마도 20대에도 계속 내 자아는 성숙해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때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성숙한 존재가 되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이제는 살다 보니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계속 번갈아 반복된다. 그 이유는 아직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남은 인생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미래는 우리에게 걱정과 불안을 심어준다. 이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생각에 무섭고 걱정되고 불안해하는 마음과 같다. 이렇듯 불안이라는 요소는 평생 우리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지금에서 느끼는 거지만 누구나 불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떨까?      

    

우리가 하는 걱정의 80%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한다. 이것은 모두 우리의 불안한 감정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내가 불안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괜찮아진다. 결국,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우리의 감정은 달라진다. 이 감정을 통제하려면 이성적 사고를 해야 한다. 그게 전두엽의 발달이고, 자아를 성숙하게 만드는 길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감정을 통제하려면, 경험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러분은 그래서 실패 경험이 필요하다. 다음에는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실패 경험을 굳이 직접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배워나가면 된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얻고, 실패를 예방했으면 한다.      

     

하지만 실제 그런 경험을 겪고 있는 고3 수험생들은 내가 하는 조언을 듣고도 마음처럼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힘든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방향성을 알려줘도 자신의 감정에 흔들려 나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몇몇은 슬기롭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도 한다.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이 이 글을 읽고 간접적으로 실패를 경험하고, 간접적으로 극복의 과정을 거쳐 성숙한 자아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학생이든, 학부모든, 취업 준비생이든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가 있다면 힘내기를 바란다. 진심이다.   


고3 수험생의 학부모는 고3 수험생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를 겪고 있는 자녀를 위해 부모도 신경이 많이 서 있기 때문이다. 가끔 자녀로 인해 학부모도 우울증을 겪는다. 이상하게도 나는 학생과 대화하면서도 많은 학생을 울리고, 학부모와 대화하면서도 많은 학부모를 울린다. 내가 하는 건 오직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열심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뿐이다. 상담의 기본은 들어주는 것이라 했다. 걱정 많고 불안한 마음을 가진 고3 학부모와 학생의 고민을 들어준 것뿐인데 진심은 통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 반 급훈을 ‘이청득심(耳聽得心)’이라 항상 정한다. 이청득심은 귀를 기울여 들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많이 힘들어하고 불안한 감정을 가진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감정을 달래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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