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의 조화로 완벽한 동기가 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특목고 중 외고다. 특목고는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줄여서 부르는 말로 과학, 외국어, 예체능, 국제 등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을 조기 발굴하여 교육할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다. 요새 외고는 예전처럼 선발 시 필기시험 보지 않지만, 자기소개서, 중학교 내신 성적(영어 과목) 등 서류평가와 면접 평가를 통해 학생들을 선발한다. 아무래도 선발된 집단이다 보니 이 지역 근처의 각 중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모인다. 매년 입시 결과도 일반고랑 비교해보면 많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특목고에 진학하는 것은, 곧 명문 대학 진학하는 것이라 연결 지어 생각한다.
보통 외고에 진학하려는 학생은 영어를 비롯하여 외국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많다. 근데 막상 고등학교에 입학해보면, 학교 교육과정을 비롯하여 수업 내용이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외고니까 모든 과목을 다 영어로만 수업할 줄 알았는데, 원어민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그렇지도 않다. 명문대에 진학하는 선배의 합격자 수를 보며 자신도 좋은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던 외국어가 어느 순간부터 시험을 위한 과목이 된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목적이 이제는 대학입시로 바뀌게 된다.
심리학에서 ‘동기(motivation)’란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모든 요인을 뜻한다. 보통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로 구분한다. ‘내적 동기’는 말 그대로 우리 내면에서 원할 때 생기고, ‘외적 동기’는 외부환경에 의해 생긴다. 미국 심리학자인 켄드라 체리(Kendra Cherry)는 ‘내적 동기’는 스스로 하고자 하는 동기로 보람, 성취감, 책임 등으로 구성되고, 활동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고 한다. 반면, ‘외적 동기’는 행동에 대한 보상을 받거나 그와 반대로 처벌을 피하려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이용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내적 동기’는 내가 하는 행동의 목적이 과정에 있다. 반면, ‘외적 동기’는 내가 하는 행동의 목적은 결과에 있다. 이렇게 ‘내적 동기’는 ‘과정’, ‘외적 동기’는 ‘결과’에 초점을 둔다. 목적이 과정에 있는 경우에는 자신이 하는 행위 자체로 만족한다. 따라서 ‘내적 동기’를 가진 학생은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고, 결과를 만들어낼 이유도 없으니 그냥 공부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내적 동기’는 지속성이 길어서 계속 유지하면, 꾸준하게 공부하게 된다.
그러나 ‘외적 동기’를 가진 학생은 목적이 결과에 있으니, 그 결과를 이루지 못했을 때 부작용이 생긴다. 예를 들어, 영어 시험을 잘 보려고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왔다면 그 과목을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가 약해진다.
이런 동기 이론을 바탕으로 외고에 입학한 학생이 외국어를 학습하는 동기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해서, 즐거워서 외국어를 공부했다. 이는 ‘내적 동기’를 갖고 외국어를 공부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입시를 강조하는 학교 환경에서 외국어를 시험 준비를 위해 공부하게 됐다. 즉, ‘내적 동기’가 ‘외적 동기’로 바뀐 것이다. ‘외적 동기’는 수명이 짧으니 공부하는 동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학부모가 아이들이 성적을 잘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벌’이나 ‘보상’을 많이 활용한다. 예를 들어, 요새는 아이가 성적이 잘 안 나왔을 때, 부모는 그 이유를 종종 스마트폰으로 여긴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압수하고 대신에 폴더폰으로 바꿔주며 ‘벌’을 내리곤 한다. 또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수험생한테 스트레스를 안 받게 하겠다고 많은 부모가 지나치게 ‘보상’을 택한다. ‘보상’은 자녀가 시험을 잘 보면 갖고 싶은 것을 사준다고 하는 약속 등이 해당한다. 이런 외적인 요인을 통해 아이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면, ‘내적 동기’는 자라날 수 없다. 결국, 이것은 큰 부작용을 초래한다.
심리학 용어 중에 ‘과잉 정당화 효과(overjustification effect)’라는 것이 있다. 이는 외적 요인으로 귀인 하여 내적 요인의 영향이 감소하는 것을 뜻한다. 1973년 스탠퍼드 대학교 사회심리학자인 마크 레퍼(Mark R. Lepper) 교수, 데이비드 그린(David Greene), 그리고 미시간 대학교의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 교수는 공동으로 외적 보상으로 인한 아이들의 내적 흥미도의 손상에 대한 ‘과잉 정당화’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연구했다. 연구 목적은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 중에 어느 쪽이 더 동기부여에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우선 아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 그림 그리기를 시켰다. 그룹 A에게 그리기 전부터 외적 보상인 상장을 수여한다고 말했다. 그룹 B에게는 상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잘 그렸을 때 상장을 수여했다. 그룹 C에게는 상장에 대한 언급도 안 했고, 잘 그렸어도 상장을 수여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 변화는 그룹 A 아이들에게서만 일어났다.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흥미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심리학적으로 단기적인 목표나 단순 업무의 경우에는 ‘외적 보상’이 효과가 있다고 한다. ‘외적 동기’를 바탕으로 ‘내적 동기’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의 적절한 조화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외적 동기’에 노출된 수험생들은 대부분 자신이 진짜로 공부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왜(why)’ 공부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항상 ‘무엇(what)’을 할지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기보다 대학입시에 더 몰입하는 것 같다. 10대에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로를 탐색하고, 미래에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자신의 진로를 왜 선택했는지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자신의 진로를 위해 공부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왜(why)’ 공부하는지 고민한 것이다. 반면, 좋은 대학을 가려고 공부한다면 그것은 ‘무엇(what)’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래에 사회에서 내가 어떤 진로를 선택하고,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하면 자연스럽게 공부해야 할 이유와 동기가 생겨난다. 왜냐하면,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전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대학이 목표라면 공부의 목적에는 ‘왜(why)’라는 이유가 없다.
고등학교 때를 생각해보면 나도 결과만 쫓던 인생이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왜(why)’보다는 ‘무엇(what)’을 가장 먼저 고민한다. 한 예로, 일반적인 제품 판매 광고에서는 제품을 먼저 소개하고(what), 어떻게 사용할지 말한다(how). ‘why’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이상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런 순서로 광고하면 소비자한테 아무런 영감도 줄 수 없다.
마케팅 및 리더십 강의에서 종종 다뤄지는 골든 서클(Golden Circle)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 객원 연구원인 사이먼 사이넥의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주제의 TED 강연에서 애플의 광고 전략에 대해서 말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가 믿는바, 즉 현실에 도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기’의 가치를 믿습니다.” (why)
“우리가 현실에 도전하는 방식은 모든 제품을 유려한 디자인, 편리한 사용법,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how)
“그래서 이 훌륭한 컴퓨터가 탄생했습니다. 한 대 사시겠습니까?” (what)
‘왜(why)’는 애플의 ‘가치관, 비전, 경영 이념, 존재 이유, 신념 등’이다. ‘어떻게(how)’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했던 행동이다. 끝에 행동의 결과물을 제시함으로써 ‘무엇(what)’에 대한 소비자의 구매를 자극한다. 이처럼 인간의 사고는 ‘why-how-what’ 순으로 이루어질 때 가장 이상적이다. ‘why’가 있기에 ‘what’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원리를 우리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는 상황에 대입해보자. 일반적인 학생들은 ‘무엇(what)’, 즉 결과를 위해 공부한다. 공부하는 이유가 좋은 대학 진학이다.
“저는 명문 대학에 진학할 거예요. (what)”
“하루에 4시간씩만 자고 공부해서 꼭 목표를 이룰 거예요. (how)”
여기에는 ‘why’가 없다. 명문 대학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일까? 이유는? 돈을 많이 벌려고? 행복하려고? 아이고 의미 없다. 의미 없는 인생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목표가 없다. 궁극적인 목표가 없으니 동기가 없다.
동기부여 강연가인 《1년 만에 교포로 오해받은 영어 정복기》의 저자 김아란 에듀테이너는 ‘뭐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로 생각을 바꾸라고 한다. 남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찾는 것도 동기가 될 수 있지만 진정한 동기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온 동기가 진정한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진짜 꿈에는 자신의 신념이 있어야 한다. 신념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다. 그 가치라는 것은 ‘무엇(what)’보다는 ‘왜(why)’에 가깝다.
EBS 스타강사 큰별 최태성 선생님은 “내 꿈은 의사, 변호사, CEO라고 말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직업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꿈은 의사가 되어 가난해도 병을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변호사가 되어 인권을 박탈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꿈은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동사'형이 아닌 '명사'형으로 꿈을 말한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단지 직업이 될 뿐이다. 결국 왜 내가 이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이유(why)'를 찾는 것이 진짜 꿈이 된다.
나도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때는 변호사, 재수할 때는 한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둘 다 꿈이 아닌 직업을 쫓았다. 그렇게 꿈을 위한 진정한 동기가 없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대학입시 실패 이후, 처음으로 고민했다. 왜 살아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제야 나처럼 잘못된 길을 가는 이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래서 교사가 되었다. 교사로서 주변을 살펴보면, 역시나 나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학생들이 많다. 안타깝다. 항상 강조하지만, 대학이 여러분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거쳐 가는 하나의 과정이길 바란다. 《이제는 대학이 아니라 직업이다.》의 저자 손영배 진로상담교사도 “취업을 하기 위해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현재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소통, 공감, 나눔 3가지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아픈 경험을 공감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이 가치를 추구하기에 교사라는 직업은 적합하다. 학생과 학부모와 소통하며 공감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내가 살아야 할 이유도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이제는 안다. 이처럼, ‘왜(why)’라는 물음은 ‘어떻게(how)’와 ‘무엇(what)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시작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