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아이는 왜 공부를 싫어할까?
하버드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온 자녀가 부모에게 묻는다. “이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명문대에 합격한 자녀한테 아침에 전화가 온다. “오늘은 무슨 양말 신어야 할까요?” 지어낸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심지어 회사 면접에 자녀를 태워서 데려다주고, 만일 불합격하면 회사 인사과에 부모가 전화해서 그 이유를 묻기도 한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아직도 부모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잘 생각해보자.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가 바라는 방향으로만 키워지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공부도 그렇다.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을 하거나 못해도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한 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 학생은 어린 시절부터 아주 철저하게 부모의 설계대로 탄탄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다. 실제 학교 성적도 우수해서 명문대 진학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외교관이 미래의 목표라고 하길래 언제부터 그 꿈을 꾸었는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그건 제가 진짜로 원하는 꿈은 아니에요. 엄마가 제게 바라는 꿈이거든요. 그런데 엄마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학생은 심지어 간단한 의사 결정을 할 때도 항상 부모님께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옷을 입을 때도, 양말을 신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그렇다고 했다. 지금은 선거권을 갖게 된 만 18세가 된 나이에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항상 부모님이 정해주는 대로 성실하게 살아왔을 뿐이라고 했다. 그렇게 그 학생은 자기 삶을 살아가는 학생이 아닌 부모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긍정의 마인드를 지니고 있었다. 부모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 생각했기에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 같았다. 실제 졸업 후 확인해보니 자신의 목표대로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이 학생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본인이 괜찮다고 해서 할 말은 없지만, 단 한 번뿐인 인생을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건 조금은 슬픈 일이다.
안타깝게도 부모가 설계한 대로 공부했던 학생들은 더 많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학생 외에는 중간에 부모와 대립하여 갈등을 겪거나 심한 경우엔 공부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부모는 더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고, 더 취직이 잘 되는 학과에 진학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학생의 성적은 그렇게까지 못 미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학문 분야가 따로 있었다. 물론 부모로서 아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업이 안 되길 바라지 않기에 더욱 현실적인 측면에서 조언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로서 부모와 학생 중간에서 두 사람의 입장 모두가 이해된다. 그래서 쉽지는 않지만 중재하려고 노력한다. 결과는 결국 둘로 나뉜다. 끝까지 각자의 입장을 좁히지 않는 경우 학생이 공부 포기를 선언하게 만든다. 반대로 부모의 생각은 좀 더 현실적이지만, 그래도 아이의 입장을 존중하겠다고 하는 경우에는 타협점이 생긴다. 결과적으로는 후자의 경우에 행복한 결말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학생 본인은 역사학과에 진학하고 싶은데, 부모는 취업이 잘되는 경영학과 진학을 바라는 경우가 있다. 앞에서 말한 후자의 경우에는 학생이 부모의 존중을 받았기에 자기도 부모의 의견을 존중해서 의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인 조언을 반영하여 진로를 선택한다는 말이다. 요새는 복수 전공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 있는지라 우선 경영학과에 진학 후 역사학과를 복수 전공으로 선택한다. 혹은 역사학과에 먼저 진학하되 경영학과를 복수 전공으로 하는 것이다.
지금 사례는 비록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시점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런 상황은 항상 생길 수 있다. 아이가 진로를 정하고 어떤 분야에 집중해서 공부할지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국, 영, 수를 잘해야 대학 시험에 유리하기에 부모는 아이가 흥미를 보이지 않아도 억지로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킨다. 재미가 없는데 꾸역꾸역 공부하려니 공부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계속 강요하니 공부가 싫어진다. 한번 안 좋은 마음이 생기면 다음에는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부모가 아이 몸에 좋다고 비싼 좋은 음식을 먹이는데, 아이는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부모는 비싸고 몸에 좋으니 많이 먹으라고 계속 강요한다. 아이는 마음이 내키지 않지만 억지로 꾸역꾸역 입에 넣고 삼킨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 때문인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배탈이 난다. 심하게 배탈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고 생고생한다. 안타깝게도 이 아이는 그 음식을 다시는 쳐다보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
방금의 말한 내용 중 ‘음식’을 ‘공부’로 바꿔서 생각해보자. 공부 과목이 될 수도 있고, 공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뭐든지 아이는 아직 공부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부모가 원하는 대로 시키려 하니까 탈이 나는 것이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새로운 음식을 아이에게 소개하여 먹게끔 하는 전략이 있는 것처럼, 공부도 전략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몸에 좋은 채소를 먹게 하려면 우선 채소가 자주 밥상에 올라와야 한다. 부모가 채소를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먹어볼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단, 처음부터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집 둘째는 3살 때부터 발효콩을 먹기 시작했다. 사실 아내가 이 음식을 좋아해서 아이들에게는 주지 않았지만, 자주 상에 올려두고 먹었다. 엄마가 맛있게 잘 먹으니까 아이들이 어느 날 한번 먹어 본다. 아쉽게도 이미 다른 음식의 단맛을 알아버린 첫째는 거부한다. 그런데 아직 다양한 음식 맛이 신기한 둘째는 먹더니 맛있는지 계속 먹는다. 지금은 다른 반찬 없이 발효콩만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 먹는 사람이 되었다.
공부도 똑같다. 처음부터 공부가 좋을 수 없다. 아무리 인생에 도움이 되는 공부라고 할지라도 아이가 마음의 준비되지 않으면 절대 시작될 수 없다. 그래서 부모는 공부에 대한 좋은 감정을 만들어 주기 위해 천천히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충분히 마음의 준비가 되면 스스로 도전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흥미를 느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속한다. 계속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 이 사이클이 다른 공부 과목으로 바뀌어 이어지면 성공이다.
그러니 부모가 원하는 아이의 인생 계획을 세울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할 마음이 들 때까지 계속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 결과가 당장 나오지 않아도 좋다. 우리도 모르게 아이는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타이밍이 맞는 순간 폭발적인 성장을 통해 멋진 결과를 만든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그 꾸준함은 건강한 공부 감정에서 만들어지기에 이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콩나물은 주기적으로 물을 주지만 자기가 필요한 만큼의 물을 당겨서 쓴다. 그래도 쑥쑥 잘 자란다. 오히려 거꾸로 콩나물 아래를 뚫어놓지 않고 물을 가둬두면 콩나물을 썩는다. 그러니 콩나물이 자랄 때까지는 계속 물을 부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게 본질이다. 부모는 계속 물을 주되, 아이가 알아서 받아들이도록 두자는 말이다. 부모의 공부가 아닌 아이들 자신이 주최되는 공부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