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아이는 왜 공부를 싫어할까?
공부에 있어서 예상치 못한 복병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다. 부모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등 아이들은 자기 주변에 맺고 있는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들과 건강하게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경우 결핍이 발생한다. 그 결핍은 나중에 쌓여서 위기의 순간이 오면 부정적인 요인으로 나타난다.
담임교사를 하면서 방황하는 학생들과 상담해보면 부모와 싸워서, 형제와 싸워서, 친구랑 싸워서, 선생님이 싫어서 공부하지 않겠다는 경우가 많았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생각보다 공부하기 싫은 이유 중 ‘관계’로 인한 게 생각보다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한 학생은 부모 모두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수재였다. 그런데 맞벌이로 어릴 때부터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부모의 등쌀에 못 이겨 외고에는 진학했지만, 자꾸만 겉도는 생활을 했다.
부모의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자 부모는 자녀를 질타하기 시작했다. 이 학생은 부모와 사이가 좋지 못하니 공부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더욱 방황했다. 매일 지각하고, 수업 시간에는 자고, 학교 밖에 나가지 못하니 사각지대로 가서 흡연하고, 학교 밖에서는 누군가 싸웠는지 자주 얼굴에 상처도 보였다. 어느 날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살펴보니 술 냄새가 진동해 코를 자극하기도 했다.
이 학생과 대화해보면 지극히 정상적이고 순수한 면을 지녔었다.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만 안 좋을 뿐인지 선생님들한테 절대 막장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본인은 이 학교에 오기 싫었는데 부모가 억지로 보내서 왔으니 학교생활이 재미없다고 했다. 부모와의 관계로 인해 삶이 무너진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다만 공부는 포기했지만, 나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이렇게 공부만 포기하고, 어느 정도 생활을 잘해주는 아이가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어떤 아이는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아서 공부를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 폭력의 주범이 되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 사이버상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더 다양해졌다. 교육청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추진단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이버 폭력에 관해 연구한 결과 실제 사례가 빈번하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 사례로 한 학생은 중학교 때까지는 부모와 관계가 좋았고, 부모도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 부모는 실망한 기색이 보였고, 그 학생도 상처를 받아 좋지 못한 대화가 오갔다. 결과적으로 대화를 멈추게 되었고, 부모와는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 집에서 애정 결핍을 경험하면서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했고,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친구와 자주 다투게 되었다. 나중엔 온라인에서 친구를 공개 저격했고, 증거가 남아서 결국 학교 폭력 사안으로 이어져 처벌을 받게 되었다.
일반적인 사례부터 극단적인 사례까지 이렇게 자세히 든 이유는 따로 있다. 감수성이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 가정에서부터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면 학교에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학생으로서 본문인 공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사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건 당연한 결과다.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에 따르면 공부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가장 최상위에 해당하고, 애정의 욕구는 결핍이 발생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되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쓴 다양한 책을 읽다 보면 공통점이 발견된다. 어린 시절 부모가 감정표현 혹은 애정표현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엔 아무리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더라도 정서적 결핍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자주 등장하는 사례로는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의 원숭이 애착 실험이 있다.
한 상자에는 우유 통이 꽂혀있는 철사로 된 어미 인형이 있었고, 다른 상자에는 우유는 없지만 부드러운 감촉의 헝겊 엄마 인형이 있었다. 새끼 원숭이는 배가 고플 때 잠깐 우유 통이 꽂힌 철사로 된 어미 인형에게 갔을 뿐 하루 18시간 동안 헝겊 엄마 인형을 껴안고 있었다. 이 실험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의 동물이 생존을 위한 영양분 제공보다 정서적 애착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렇게 어미 원숭이 없이 자란 원숭이들이 어른이 된 후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계속되었다. 어미 없이 자란 원숭이의 경우에는 다른 원숭이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고, 사회성도 형성되지 않았다. 정서적 혹은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했고, 학습 및 기억 능력 저하까지 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사회성을 요구하는 동물 실험이 보여주는 사례뿐만 아니라 실제 인간에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세계 2차 대전 시기에 영국이 독일의 폭격을 받자 아기들을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충분히 먹을 것을 주고 위생도 세심하게 살폈는데도 아이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연구가 진행되었고, 결국은 아기들을 안아주면서 분유를 주었더니 사망률이 떨어졌다고 한다.
비인지 발달 관련 다양한 책을 읽어보면, 어린 시절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라고 말한다. 스킨십을 통해서는 옥시토신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호르몬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기분 안정과 행복감을 준다. 게다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여 분노와 불안을 감소시키고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무릎에 앉혀 놓고 뒤에서 안은 자세로 책을 읽어줄 때 안정감을 느껴서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공부의 핵심인 독서 습관과 문해력의 시작은 어떻게 보면 부모와 아이가 몸을 밀착하여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시간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다 큰 청소년기에까지 이렇게 친밀감을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 형성한 부모와 자녀와의 좋은 관계는 분명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실제 학생과 학부모를 동시에 상담하면서 공부 감정이 올바르게 형성된 아이들은 부모와 관계가 좋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충분히 서로의 생각 차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의견을 맞춰가면서 좁히려 노력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대화 속에서 느껴진다. 반면 부모와 자녀가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한 경우에는 반대의 상황이 발생한다. 서로 입장 차도 크고, 의견을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서로 비난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낯선 환경인 학교에서 잠시 1시간 내외로 상담하면서 발생하는 상황을 살피면, 집에서는 얼마나 더 적나라하게 대화가 오갈지 눈에 선하다. 말과 행동은 다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하지 않는가?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녀가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화로 모든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상담 온 부모의 말투, 웃음소리, 손짓 등이 학생의 평소 모습과 너무도 똑같아서 소름이 돋곤 한다. 아이가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부모가 집에서 어떻게 아이에게 공부 감정을 심어주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자녀가 공부를 싫어하게 되고, 못하게 된 결과는 우리 부모들에게 그 원인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아이는 엄마랑 싸워서 공부를 포기한다고 하는데, 그 싸움의 시작은 누구더라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건 관계로 망가진 공부 감정은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를 공부를 좋아하고 잘하게 하고 싶다면 무한으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에 앞서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무한한 감정적 지원과 지지를 해야 할 것이다. 부모와 싸워서 공부를 안 하겠다는 결과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